교육부가 어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면서 22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예시했다. 2021~2023학년도 수능 및 2024학년도 6월 수능 모의평가 국어, 영어, 수학 문항 480개에서 추려냈다는 문제들이다.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체로 대학 전공자도, 영어 원어민도 답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다.
국어에선 클라이버의 법칙을 이용해 농게 집게발 길이를 추정하는 킬러 문항부터 눈길을 끈다. 대학 전공자가 아니라 대학교수라 해도 과연 자신 있게 정답을 고를 수 있을지 여간 의심스럽지 않다. 사실 지문 이해조차 쉽지 않다. 교육부와 출제 관계자는 이런 문항이 왜 국어 분야에 있는지부터 명쾌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국어의 다른 문항으론 몸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다룬 지문을 읽고 추론하는 문제도 있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역할 등을 다룬 경제 분야 지문을 읽고 답을 찾는 문제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트리핀 딜레마, 브레턴우즈 체제, 금본위제, 닉슨 쇼크 같은 경제 용어가 줄줄이 등장하는 탓이다. 수학에선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한 문제, 대학 수준의 테일러 정리나 벡터의 외적 개념을 활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 등이 등장한다.
이런 킬러 문항들이 뭔 교육적 효과를 낳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교육 번성의 밑거름이 돼 온 것만은 확실하게 만천하가 알고 있다. 이런 문항들에 밀려 온 나라의 학부모와 입시생들은 학원가로 달려갔다. 그래서 결국 의식주 비용 위에 사교육비가 있다는 말까지 나돌게 된 것이다. 국내 고소득 가정은 사교육비로 한 달 평균 114만 원을 쓴다고 한다. 서민 가구도 자녀 학원비에 식비·주거비보다 더 큰 비용을 내고 있다. 다들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한국 교육상황을 취재한 후 한국 학생들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촌평하고, 한국 교육시스템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럽다”고 표현한 사례가 있다. 킬러 문항으로 뒤범벅이 된 수능과 무관할지 의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18년 한국과 중국, 미국,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국 고등학교 이미지를 설문조사한 결과 ‘사활을 건 전장’이었다는 응답이 한국은 80.8%에 달했다고 한다. 중국(41.8%)과 미국(40.4%)의 두 배에 가깝다. 일본(13.8%)은 격차가 컸다. 이 또한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은 아닐 것이다.
역대 정권은 대를 이어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다. 그 정상화는 결코 구호로 이뤄지지 않는다. 킬러 문항 추방과 같은 디테일에서부터 길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21세기 세상이 인공지능(AI)과 같은 새 기술, 새 환경으로 재구성되는 현실도 직시할 일이다. 킬러 문항을 넘어 새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해법을 강구해야 할 국면인 것이다. 교육개혁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 등 사회 전체의 건강과 직결된 과제다. 분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