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좋은 기회로 유엔환경계획(UNEP)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정부 간 협상 위원회(INC) 사무국장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파리기후협약 이후 최대의 친환경 합의(그린 딜)가 될 세계 첫 플라스틱 오염 규제 협약의 국가 간 협상을 지원하는 총 실무를 맡은 인물이다.
환경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기에 인터뷰가 확정되자마자 INC 2차 회의에 참석한 한국의 수석대표를 만나고, 국제기구에 근무 중인 지인과 통화도 하며 인터뷰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전 준비 작업 중 들은 공통된 얘기는 이번 인터뷰이가 중립을 지켜야 하고, 기울기를 가지면 안 되는 위치라는 사실이다.
어쨌든 인터뷰 준비는 계속됐고, 통상적인 질문을 포함해 24개의 사전 질문지를 보냈다.
만나기 이틀 전 도착한 답변지에는 'I am not in position to comment'(나는 논평할 입장이 아니다), 'I am not in a position to predict'(나는 예측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I am not in a position to comment on individual positions of Members'(나는 회원들의 개별적인 입장에 대해 논할 수 없다) 등이 수없이 등장했다.
예상은 했지만 김은 빠졌다.
통상적인 답변들로 기사의 얼개를 만든 후 직접 그를 만났다. 천진난만한 눈빛과 밝은 표정이 잘 어울리는 아주 유쾌한 분이었다.
아예 새로운 질문과 답변이 어렵다고 한 질문들을 조금씩 꼬아서 다시 던졌다. 역시 중립을 지키는 답변이 나왔지만, 어느 부분에선 약간의 기울기가 잡혔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이 기울기에 기자의 스킬을 약간만 더하면 파급력 있는 기사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굴렸다. 공익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다. 5차 회의를 예정으로 진행되는 플라스틱 국제 협약 협상은 이제 2회차를 지났다. 협상 지원 사무국의 기울기는 협약 성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그가 악의를 가지고 기울기를 내비쳤는가? 이도 아니다. 그는 플라스틱의 심각성에 대해 얘기했고, 진정으로 협약 성안이 절실하다는 마음에서 한마디라도 더 전하려다 보인 기울기다.
결론은 이번 인터뷰이가 보인 약간의 기울기는 나만의 'B컷'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 기자수첩을 쓴 목적이기도 한 그 'B컷'의 진의를 'A컷'으로 바꿔 풀면
"스스로를 위해, 서로를 위해, 자연환경을 위해, 무엇보다도 후속 세대를 위해 유해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여야 하며,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 채택을 위해 '전 세계'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