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조사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3%로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하며 한은으로선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다만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3.9% 상승하며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도 여전히 높기만 하다.
체감물가는 자주 사는 상품들의 가격변동을 소비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물가다. 소비자 개개인은 연령, 직업, 가족 구성 등에 따라 주로 구입하는 품목이 다르다. 직장인은 단골 음식점의 점심 메뉴값, 주부는 마트, 자영업자는 전기·가스, 재료비 등에 민감하다.
한은은 매달 ‘물가 인식’을 조사한다. 일반인이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올랐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수치를 보면 2월 5.2%, 3월 5.1%, 4월 4.9%, 5월 4.7%, 6월 4.6%, 7월 4.3%로 서서히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4%대에 육박한다.
기저효과도 물가 착시의 원인이다. 지난해 7월 물가 상승률은 무려 6.3%다. 여기에 2.3% 더 올랐다.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여전히 물가는 오르는 데, 작년에 더 크게 올랐던 기저효과로 상승률이 낮아졌을 뿐이다.
통계를 내는 방식의 한계도 있다. 통계청은 5년마다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 품목과 가중치를 조정한다. 이 때문에 빠르게 바뀌는 소비 구조를 반영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 팬데믹 기간 크게 늘어난 음식 배달 서비스 이용이 있다.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엔 배달 요금 항목이 없다. 외식 서비스 품목 중 일부에 배달비가 포함된 가격이 반영될 뿐이다. 배달 요금이 오르면 체감 물가는 올라가는데 공식 물가 지표엔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이처럼 공식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가 큰 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달부터는 기저효과가 사라지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초 예상대로 8월부터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물가 경로상에는 국제유가 추이, 기상여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집중호우와 폭염에 따른 물가 상승세도 8월 물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버스와 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 역시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원유(原乳) 가격 인상도 예정돼 있어 우유가 들어간 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감안하면 '물가 안정'이 책무인 한은이 제 역할에 나서야 할 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2월 기준금리를 연 3.50% 동결한 후 지난달까지 4연속 동결 중이다. 금리인하는 연내 없다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과감한 금리인상으로 고물가를 잡아가던 중, 당시 카터 대통령의 은근한 금리인하 압력에 금리를 낮췄다. 그러자 물가가 다시 치솟았다. 이를 다시 끌어내리기 위해 더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넉 달째 늘고 있는 가계부채 등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물론 있지만, 한은의 첫 번째 책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