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이상행동 때문에 극단의 갈등으로 치닫는 신혼부부 이야기를 다룬 ‘잠’이 6일 개봉했다. 신인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으로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봉준호 감독까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는 평가를 남겨 영화 팬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 외에도 공포를 조성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평단의 우호적인 반응이 줄이었다.
컷 연결에 ‘봉준호 영향’ 평가도
‘잠’은 신혼부부 집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위 높은 공포 상황을 다루면서도 잔인한 묘사는 최대한 덜어냈다. 앞뒤 맥락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주요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영리한 접근이 눈에 띈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통속적인 장르영화 속 장치도 전무하다. 반려견과 신생아처럼 자기 방어력이 크게 떨어지는 약자를 활용하는 대목에선 불필요한 거북함을 최소화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우회적인 연출에도 긴장감이 분명하게 감지되는 건 컷과 컷의 ‘찐득한 연결’ 덕이다. ‘봉준호 감독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2003)의 시체 장면이 핏물 흥건한 고기 굽는 장면으로 이어지듯, ‘잠’의 방뇨 컷은 비 내리는 창문 컷으로 전환된다.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대목이 일상적인 시공간에 겹쳐 보이도록 연출해, 관객의 찜찜함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정유미, 이선균 호연에 ‘부부 사이’ 고찰도
꾸준한 수면 클리닉 치료에도 현수의 이상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수진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출산 이후 갓난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모성이 발동하면서부터는 밤잠까지 설치기 일쑤다. 상황을 고민스럽게 지켜보던 수진의 엄마는 무속인(김금순)을 모셔 오기에 이른다. 부부간 문제가 비이성의 분야로 확장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병원 치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자 수진은 무속인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이 대목부터는 주연배우 정유미, 이선균의 호연에 주목해야 한다. 정유미는 ‘부부는 무엇이든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신경증적 강박 증세로까지 이어지는 아내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소화한다. 이성적인 해결책을 고수하던 남편 역의 이선균은 ‘납득되지 않는 배우자의 선택도 때로는 끌어안는다’는 고민어린 선택을 잘 보여준다. ‘잠’이 스산한 공포와 섬뜩한 상상의 재미를 넘어 보편적인 부부 관계까지 돌이켜보게 하는 힘을 지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