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금리차, 엔저 부추겨
급격한 변동에 ‘복면 개입’ 관측도
일본 재무관 “개입 여부 노코멘트”
‘진퇴양난’ 상황…수출 유리하지만 가계 지갑 닫을 수도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50.16엔까지 치솟았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엔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0월 하순 이후 약 1년 만이다. 엔·달러 환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엔화 가치가 그만큼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저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꼽힌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속된 긴축 정책으로 22년래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반면 일본은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날은 미국의 견조한 고용 지표에 따른 고금리 정책 장기화 관측으로 달러 매수, 엔화 매도의 흐름이 강해진 것으로 풀이됐다.
한편 엔화 가치가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달러당 150엔을 터치한 직후 빠르게 회복되면서 당국의 개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엔·달러 환율이 고점을 찍은 뒤 불과 몇 초 만에 약 2% 하락해 147.43엔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후 미국 국채 금리 상승 영향으로 엔·달러 환율은 다시 149엔대까지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급격히 진정됐던 움직임을 두고 당국의 개입 가능성을 점쳤지만,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본은 작년에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이른바 ‘복면 개입’을 실시한 바 있다. 엔·달러 환율이 작년 10월 21일 달러당 151엔대 후반까지 상승했다가 144엔대 중반으로 7엔가량 급락한 적이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시장 개입 사실을 함구한 채 대량의 엔화를 매수하고 달러화를 내다 팔았다.
엔저 현상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경기는 1년 넘게 이어진 금리 인상에도 아직 잘 버티고 있으며, 대미 투자자금이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다. 조사회사 EPRF글로벌에 따르면 올해 미국 채권펀드에 유입된 금액은 약 1770억 달러(240조7554억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달러화가 독보적인 강세를 보이면서 엔화와 유로화 등 다른 통화 가치는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일본 당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유리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가계가 지갑을 닫을 수도 있다. 일본은 식품의 약 60%, 에너지의 약 94%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랫동안 물가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데 익숙했던 일본 가계가 이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