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를 지나고 있는 건설업계가 내년에 더욱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분양 증가로 우발채무 위험이 고조되면서 재무 건정성이 악화한 영향이다. 특히 지역기반 중소 건설사들이 무너지면 지역 경제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4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종합공사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512건으로, 2022년 같은 기간(304건) 보다 68.8% 증가했다. 작년 전체 폐업 신고 건수 362건을 뛰어넘은 건수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537건)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다.
재무 건전성 악화로 부도를 낸 건설업체도 늘고 있다. 국토부가 집계한 올 1월부터 10월까지 전국의 부도 건설업체 수는 총 13곳(종합건설사 7곳, 전문건설사 6곳)이다. 이들 중에는 시공능력평가 75위 대우산업개발, 109위 대창기업, 113위 신일, 578위 금강건설, 경상남도 지역 8위 건설사인 남명건설 등이 포함돼 있다.
업계 안팎에선 올해 보다 내년에 폐업·부도 위기에 내몰리는 건설업체가 더욱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 경색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과 고금리, 불어나는 우발채무 등 다발적 요인이 겹쳐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기반의 중소·중견 건설사의 줄도산이 본격화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현금 보유량이 낮고, 사업장 수가 적어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 여기에 미분양 증가로 주 수입원인 지역 공공공사 발주가 줄면서 곳간이 급격히 쪼그라든 상태다. 앞서 부동산 호황기 쌓아둔 현금과 정부의 PF 보증 확대로 버텨왔지만, 더는 한계라는 게 업계 내부의 목소리다.
A 중견건설사 임원은 "지난 몇년 간 주택사업을 통해 벌어둔 돈으로 2년 가까이 버틴 것"이라며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 비용도 내기 어려운 업체들이 많아 내년에는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도산이 현실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 업계도 같은 기조의 전망을 내놨다. 올 9월 말까지 집계된 주요 건설사의 PF보증 규모는 28조 원으로, 6월 말 보다 3000억 원 가량 늘었다. 주요 건설사 13곳의 순차입금 규모는 10조 원을 웃돈다. 한신평은 내년도 경기 부진 장기화와 공사 원가 상승으로 PF 사업성이 저하되면서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사업장의 우발채무를 해소하지 못하면 시공사가 추가 신용보강에 나서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재무 리스크로 연결된다. 자금줄이 마른 중소 건설사는 파산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청업체와 지역 상권 등 산업 전반으로 여파가 미칠 수 있다. 특히 쌓아둔 대손상각비로 상쇄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곳들은 내년 상각에 대한 EOD(기한이익상실, 대출 만기 전 자금 회수 요구)가 발생하면 문제가 터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한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사가 신용보강을 한 사업장은 책임을 나눠 지는 계약 구조를 띈다. 쌓아둔 대손상각비로 헷지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곳들은 내년에 EOD가 발생하면 문제가 터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설사 한 곳이 폐업하더라도 지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연쇄적인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채무 상환능력이 낮은 건설사가 늘고 있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이 발간한 '2022년도 건설외감기업 경영실적 및 한계기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작년 기준 건설업 외감기업 2232곳 중 잠재적 부실기업은 총 929개, 41.6%에 달한다. 진행사업장의 분양대금 유입과 PF차입금 상환 등을 통해 건설사들의 PF위험이 축소되기 상당 시간이 걸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김태준 건정연 연구위원은 "건설경기의 반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24년 이후 건설업체의 전반적인 부실은 본격화될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전문 및 중소 건설업체들의 연쇄부도 및 흑자도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공정한 생태계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