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기업 단기차입금 규모 급등”…한은 “좀비기업 4000곳 육박” 추정
경기침체의 그늘이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기다려왔던 금리 인하 논의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지만, 현재의 금리는 최근 5년간의 저금리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고금리 속 한계기업이 4000곳에 달하면서 내년엔 적잖은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삼일Pw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M&A 거래건수는 2만7003건, 거래금액은 1조2100만 달러(약 1290조 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거래건수는 9%, 거래금액은 39% 줄어든 규모다. 국내 M&A 또한 거래건수(879건)와 거래금액(35조 원)이 각각 13.3%, 24.9% 감소했다. 또 올 상반기 거래 증감률로 추정한 연간 M&A 실적(거래건수·금액)도 국내외 모두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는 2018년 이후 최저, 국내는 2019년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고금리 상황에 조 단위의 대규모 M&A가 많지 않았고, 매각 대상으로 나온 건들이 인수 조건에 관한 협상이 결렬되거나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해 매각이 철회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에 나온 매물은 넘쳐난다. 우리금융은 최근까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다 2000억 원 이상의 가격은 곤란하다며, 인수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이외에도 △상상인플러스 △조은 △한화 △애큐온 등 5개 저축은행이 매물로 나와 있다.
KDB생명은 하나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실사 과정에서 경영 정상화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측돼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ABL생명은 BNK금융그룹이 발을 빼면서 없던 일이 됐으며, MG손보의 경우 반년 넘게 시장에서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동양생명 △롯데손해보험 등이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적잖은 기업들이 M&A 시장에 쏟아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해 9월 기준 국내 비금융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3만1908곳의 최근 3년간 회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 기업의 외부 자금 조달 규모는 2020년 913조7000억 원에서 지난해 1163조4000억 원으로 27.3% 증가했다. 외부 자금은 장·단기 회사채와 장·단기 차입금을 합친 금액이다. 이 중 단기차입금의 비중이 같은 기간 35.5%에서 39.0%로 크게 뛰었다. 특히 2021년을 기점으로 기업들이 ‘급전’을 더 많이 빌리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단기차입금이 장기차입금보다 더 많아졌다.
현재 같은 경기침체 기조가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부실기업 내지는 부실사업들이 매물로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계기업은 3903곳으로 분석대상 외감기업(2만5135개)의 15.5%를 차지해 직전년도 비중(14.9%)을 넘어섰다.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에도 못 미치는 기업을 말한다.
한계기업에 대한 대출규모도 증가 추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민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5대 은행 및 3대 국책은행(산업·기업·수출입)이 한계기업에 대출한 금액은 54조5000억 원으로 2019년 말(34조2000억 원) 대비 20조 원 늘었다.
내년 기업 환경도 녹록지 않다. 미국에선 기준금리 인하 신호를 처음으로 보내고 있지만 경기 침체가 예상돼 이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면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판단이다.
오창걸 PKF서현회계법인 M&A 리더는 “내년 국내경기가 (올해보다) 더 위축될 것으로 많은 기업인이 예상하고 있어 B2B 회사뿐 아니라 B2C 회사들은 위기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가 일부 낮아진다고 도움될 것 같지는 않고, 실제 경기상황이 개선된다는 시그널이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