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대학 때가 문득 떠오른다.
‘선거와 정당’ 수업 시간이었는데, 교수님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유권자들에게 ‘맞춤형 이메일’을 보내는 선거 전략을 설명했다. 유권자의 거주지, 성별, 정치성향 등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버전의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집에 사는 부부에게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이메일이 보내졌다. 아내에게는 교육 문제를, 남편에게는 일자리 문제 등을 홍보하는 방식이었다.
한 하원 의원 선거 캠프에서의 일도 지나간다. 캠프 자원봉사자들은 참 많이도 토론했다. 후보를 어떻게 소개할 건지, 어떤 정책을 내밀 건지 등이 요지였는데, 유권자 집을 방문했을 때 처음 인사말을 어떻게 할 건지까지 논의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 ‘뭐 저런 것까지 논의하나’ 하면서 어린 나이에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대뜸 사대주의를 말하는 건 아니다. 여의도를 뛰어다니는 국민의힘 출입 기자가 태평양 건너 땅의 오래된 향수를 꺼내는 건 잊어버린 무언가가 생각났기 때문 아닐까.
국민의힘은 최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을 개혁하기 위함이다. 한 위원장은 수락 연설에서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운동권 청산’으로 운을 뗀 그의 연설은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환상 속의 그대’ 가사로 마무리됐다.
인용과 직설을 아우른 그의 연설을 두고선 극명하게 의견이 갈렸다. 야권에서는 “용산 세레나데”, “헤이트 스피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진솔하고 의지가 굳다”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운동권 세대에서 X세대로의 세대교체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었다.
‘5천만의 문법’이었을까.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이름들에게 ‘운동권 청산’이나 ‘개딸전체주의’, ‘청산대상’은 어쩌면 낯선 단어들이었을지 모른다. 주변만 돌아봐도 공공임대주택 청약에서 떨어져 아쉬워하는 친구는 있어도 ‘운동권 청산’에 앞장서는 친구는 없다. 작고 소중한 ‘이더리움’ 코인을 차마 팔지 못한 채 ‘무엇을 사야 치킨값이라도 벌까?’ 고민하는 중년들도 꽤 많다.
얼마 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얘기를 들었다. “국민의 생활을 걱정하는 것이 정치의 최고의 법칙”이라고 말했단다. 정치판이 답답하다. 사방에서 ‘이념 카르텔’,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이럴 때 누군가의 꿈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권력자들의 관심사 말고, 궁중 암투인지 단합인지 모를 ‘그들만의 이야기’ 말고, 누군가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담대한 희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