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태오는 198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농구선수를 꿈꾸고 한국에 잠시 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미국으로 갔다. 그는 여러 나라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전형적인 한국 남자 '해성' 역할을 맡은 그는 '아름다운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난 유태오는 "다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남들과 소통할 때 정확한 말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근데 노력만으로 될 순 없다. 그게 내 운명인데, 그런 상황들에 한이 맺혀 있다. 말하자면 아름다운 슬픔"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편으로 어떤 문화권에서 봐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방식이 뭔지도 안다. 내 안에 그게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점에서 내가 해성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걸 믿고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24년 만에 재회한 두 남녀의 인연에 관한 영화다. 유태오는 "한국에서 인연은 매일 쓰는 말이다. 이걸 로맨스와 연결해 서양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시나리오를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그는 "인연이라는 철학과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특히 나를 눈물 나게 했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느낌이 잘 전달되면 누구나 이 영화를 잘 봐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라며 "설레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또 내 연기에 관한 평가를 들으면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준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태오는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그 상황이 실현되지 않는 이상 실감이 잘 오지 않는다"라면서도 "시상식 전날 런던에 있는 호텔 방에서 급하게 수상 소감을 준비했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아쉽게도 수상자는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였다. 그는 "시상식 후 디너쇼에서 머피에게 용기를 내 다가갔다"라며 "당신의 오랜 팬이라고 말하자 날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게 데려가 인사할 기회를 주었다. 너무 좋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놀런 감독님에게 나중에 한국 배우가 필요하면 꼭 오디션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랬더니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웃었다.
또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에 출연하면서 변화한 연기관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예전에는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접근했다"라며 "이번에는 인연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화해야만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유태오는 배우자인 니키 리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나에게 어떤 제안이나 오디션 기회가 오면 항상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세상 바깥에 붕 떠 있는 사람이라면 아내는 나보다 한발 좀 더 단단하게 사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서 보여주고 소통하는 존재다. 그가 나의 장단점 등을 잘 정리해서 말해주면 그걸 듣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편"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