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이 사실상 무산됐다.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데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소득대체율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막판까지 국민의힘은 43%, 더불어민주당은 45%를 고수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절충안으로 여·야의 중간인 44%를 절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혁이 시급하니, 일단 급한 불은 꺼야 한다는 논리다.
얼핏 보면, 국민의힘 안은 재정안정에, 민주당 안은 소득보장에 무게가 쏠려있다. 또 중재안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기껏해야 소득대체율 1~2%P 차이니 어떤 안이든 처리해 보험료율을 높이는 게 바람직해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굳이 세 안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하느냐다. 세 안 모두 근본적으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향이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느냐, 마느냐가 아닌 ‘얼마나 높이냐’를 두고 싸운다.
올해 소득대체율은 42%다. 매년 0.5%P씩 낮아져 2028년부터 40%로 고정된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20년 수급을 기준으로 40%다. 산술적으로 소득대체율을 1% 올리려면 보험료율 0.5%P 인상이 필요하다. 보험료율을 13%로 현재(9%)보다 4%P 올린다면, 소득대체율을 48%까지 높여도 재정건전성은 유지된다. 일부 전문가는 실제로 이렇게 주장한다.
이 계산이 맞으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가입자와 수급자 수가 같아야 하며, 현재 기여율·지급률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현실에서 가입자는 가파르게 줄고, 수급자는 가파르게 는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기준으로 2066년이면 15~64세와 65세 이상이 역전된다. 보험료율 인상에 따른 수입 증가보다 소득대체율 상향에 따른 지출 증가가 더 커진다. 또한, 현재 기여율·지급률은 지속 불가능하다.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기납부 보험료(원금)만큼만 연금을 받는다면 소득대체율은 18%가 된다. 기금운용 수익으로 나머지 22%를 채운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결국, 보험료율 0.5%P 인상으로 소득대체율을 1%P 높일 수 있다는 건 가입자·수급자 추계와 현재 기여율·지급률의 합리성을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계산이다.
얼마나 높이든, 소득대체율을 상향 조정하면 그 자체로 국민연금 재정안정성에 충격이 발생한다. 당장 20~30년은 보험료 수입이 늘어 적립금 소진 시기가 늦춰지겠지만, 적립금이 소진된 뒤에는 가입자들이 폭탄 수준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굳이 소득대체율을 높이겠다면, 현재 가입자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적어도 20%는 내야 합당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정지원을 언급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세수를 추가 확보하지 않는다면 어떤 예산을 줄여 빼 올 것인지 말이 없다. 매년 수십조 원이 소요되는 기초연금 출구전략이라도 제시했다면 동의까진 몰라도 이해는 했을 거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재정지원론은 과도하게 추상적이고 희망적이다.
아마도 소득대체율 상향의 최대 피해자는 이제 막 태어난,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가 될 것이다. 현재 연금개혁의 결정권을 쥔 기성세대는 자녀세대에 미움받지 않고자 모든 부담을 손주세대에 떠넘기려고 한다. 대신 현재의 자녀세대가 미래에 기성세대가 돼 그들의 자녀세대로부터 미움받을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문제는 기성세대가 그간 개혁을 미뤄온 결과다. 미움을 받든, 욕을 먹든,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보험료 부담을 어떤 결정권도 없는 손주세대에 떠넘겨 자식세대가 욕을 먹게 하겠다는 건 역겨운 폰지 사기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연금개혁은 소득대체율이 아닌 보험료율 인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소득대체율을 지금보다 2~4%P 올린다고 노후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다. 국민연금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보단 퇴직연금·주택연금 등 다른 연금제도와 연계,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사회보장제도 개편을 통해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게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