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포럼)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골자로 하는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에 대해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포럼은 12일 논평을 내고 “두산밥캣 주주는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됐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들은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들도 당황스럽겠지만,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3000억 원이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 원에 불과하고 1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며 “두산로보틱스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하고, 지난해 매출 대비 시가총액(PSR)이 100배가 넘는 초고평가 상태로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확히는 직전 한 달, 일주일, 전날 주가 가중평균으로, 누구나 엑셀 한 번만 돌리면 회사 가치를 측정하는 모든 재무적 기법을 제치고 상장회사 기업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방식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다”며 “지난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듯이,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장회사라고 해서 주식시장 시가만으로 합병에 필요한 기업가치를 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가와 30% 이상 차이 나는 경우가 다수”라고 강조했다.
포럼은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으로, 진정한 밸류업은 이런 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비로소 가능하하다”며 “실제 행동해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 보호의무도 없으니, 두산밥캣의 이사가 아무리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이런 가격과 시기에 엄청난 고평가 테마주인 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기법이 나오는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보호 의무와 같은 일반 원칙이 없으면 항상 법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밖에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