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감이 너무 심해요… '진짜 배우'들이 보고 싶어요
귀신보다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더 무서워요
MBC 괴담 토크쇼 '심야괴담회'의 최근 방송을 본 시청자들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심야괴담회'는 괴담을 소재로 하는 스토리텔링 챌린지 프로그램인데요. 2021년 1월 파일럿 방송 당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시간 점령하며 순항을 시작했습니다.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야괴담회' 스토리텔러들이 들려주는 괴담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죠.
14일 방송된 '심야괴담회 시즌4'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기이한 집안 풍습을 담은 '생인제사',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불어닥친 비극 '개구리 집', 철거촌에서 배달을 기다리던 미스터리한 여자 '유배지에서 온 콜' 등 여름밤을 서늘하게 식혀줄 괴담들이 소개됐습니다.
이 가운데 '개구리 집'과 관련된 비밀을 소개하는 과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 팬이지만 이번 회차 재연 장면은 너무하다. 방송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등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는데요. 문제의 재연 장면에 등장한 인물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현실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동자, 매끄러워도 너무 매끄러운 피부, 부자연스러운 손동작까지…
이날 방송된 '심야괴담회 시즌4'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구현한 이미지로 재연 장면을 꾸몄습니다. AI 관련 이미지가 나갈 땐 '본 괴담의 일부 이미지는 AI로 연출됐습니다'라는 자막도 함께 송출됐죠.
방송 이후 다수의 시청자는 게시판을 통해 "기괴하고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수십 개 남겼습니다. 이와 별개로 재연 배우 분량이 AI로 대체되면서 재연 배우들의 일자리도 없어지는 셈이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심야괴담회'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이 재연 영상입니다. 제보받은 기이한 사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텔러들의 압도적인 연기력, 공포영화를 방불케 하는 재연 장면으로 소름을 유발해왔죠. 재연이 어려운 장면은 일러스트로 대체하는데, 역시 높은 퀄리티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분장팀 월급 더 줘야 한다", "내가 예능을 보는 건지 공포영화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야기만 들으면 '무섭네' 정도인데 배우들 연기랑 분장이 진심이라 실눈 뜨고 겨우 본다" 등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AI 이미지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장면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는데요. 제작진은 한 연예 매체를 통해 "AI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다수의 의견은 제작진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AI가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구성하기는 어려워서 에피소드 전체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향후 축소하고 삽화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이 AI를 방송에 도입한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방송 환경의 악화로 각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은 만성적인 제작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AI 이미지는 삽화에 비해 마감기한을 잘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후반 작업이 용이하고 재연이나 삽화에 소요되는 제작 예산에 비해 저렴한 단가로 빠르게 제작이 가능하다. AI 이미지 재연의 도입은 제작비 절감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했죠.
문화·예술계에서는 생성형 AI에 대한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창작자들이 AI에 얼마나 큰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찾을 수 있죠.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지난해 7월 동시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해 5월 먼저 파업을 시작한 작가조합에 이어 배우조합이 합류하면서 할리우드의 양대 노조가 1960년 이후 63년 만에 동반 파업을 벌인 겁니다.
이들의 집단 파업에는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감독·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생성형 AI에 대한 위기의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작가들은 AI 기술 개발에 따라 기본 틀을 AI가 제작하면 작가는 약간의 살을 붙이는 역할만 해 작가의 업무가 보조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기존에도 불안정했던 작가의 수입이 더욱 축소될 판이라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입장이었죠.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외모나 목소리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 무단으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면서 이를 방지할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유명 배우 톰 행크스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제 누구나 AI,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 기술로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며 "내가 내일 버스에 치여 크게 다치더라도 내 연기는 계속될 수 있다"고 AI가 콘텐츠 업계에 미칠 악영향을 경고하기도 했죠.
이들의 파업은 약 6개월 만에 종료됐습니다. 배우 노조와 세계적인 스튜디오인 디즈니, 넷플릭스 등의 영화·텔레비전 프로듀서 연합(AMPTP)이 임금 인상과 AI 사용에 대한 보호장치를 포함하는 3년 계약에 잠정 합의했다고 밝힌 건데요. 계약 조항에는 3년간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임금 인상 및 스트리밍 보너스와 영화 제작에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보호 조치가 포함됐죠.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영화계에선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영화를 만드는 하나의 도구이자 장르로까지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속속 포착되고 있는 건데요. 월트디즈니는 지난해부터 AI 전담 특별팀을 꾸렸고, 소니픽처스는 영화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트라이베카 영화제에는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AI '소라'로 만든 작품 6편이 출품됐습니다. 4일 개막한 부천판타스틱영화제(BIFF)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최초로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했죠.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권한슬 감독이 만든 AI 영화 '원 모어 펌킨'(One More Pumpkin)은 최근 아랍 두바이에서 열린 제1회 인공지능영화제(AIFF)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제는 세계 500여 편이 출품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권 감독은 상영시간 3분짜리 작품을 닷새 만에, 제작비는 전기요금과 감독의 인건비를 제외하고 0원으로 제작했습니다. 모든 장면과 음성, 음향은 생성형 AI로만 만들어졌죠.
메이저 영화사들은 물론 독립 창작자들까지 AI 제작에 뛰어든 건 역시 '단가' 때문이었습니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시나리오 작업부터 영화 제작까지 마칠 수 있는 건데, 시간까지 단축됩니다. 배우들의 출연료를 비롯한 수억 달러대의 제작비로 고심하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은 제작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을 겁니다.
방송가에서도 AI는 점차 활발히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AI 기술로 모방하거나 목소리를 합성해 대사를 말하는 등의 방식인데요. 방송사에서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기자들의 표정부터 입 모양, 음성 등 데이터를 분석해 만드는 기술을 접목한 겁니다.
올 초에는 AI가 예능 PD가 돼 캐스팅과 연출, 진행, 편집을 도맡는 MBC 'PD가 사라졌다!'가 방송됐습니다. AI의 통제를 인간이 어떤 태도로 따르는지, 욕망을 가진 인간이 AI와의 대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등을 보여주는 일종의 미래사회 실험 프로젝트였는데요. 해외에서 잇단 계약 러브콜을 받으며 화제를 빚었습니다.
1월 종영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딥페이크 기술로 '국민 MC' 송해의 젊은 시절을 재현했고, tvN 최고 시청률 기록을 쓴 '눈물의 여왕'은 생성형 AI로 주인공이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걷는 환각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 밖에도 AI의 목소리와 진짜 가수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음악 버라이어티 예능 KBS2 '싱크로유', 국내 최초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EBS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AI 기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KBS '김이나의 비인칭시점' 등이 방송되는 등 AI 활용한 프로그램이 잇달아 등장했죠.
그러나 AI를 활용한 모든 프로그램이 성공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불쾌하다'는 느낌을 심어준 사례도 적지 않은데요.
일례로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는 전남편 살해범 고유정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고유정은 밝은 목소리로 전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2019년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죠. 고유정의 목소리가 AI로 재현된 겁니다. 화면에도 'AI로 고유정 보이스 재현 중'이라는 자막이 송출됩니다.
고유정뿐만이 아닙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계곡에서 물에 빠지도록 해 살해한 이은해의 목소리를 재현해서는 "제 이야기를 할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고 말하고,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전현주를 닮은 목소리론 "나리 양 유괴사건에 대해서 진술하겠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모두 AI입니다.
제작진은 "공적 관심 인물이기에 후반 제작 과정에서 범죄자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하기로 했다"며 "국내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에 모든 작업에 신중을 기했다. 목소리 재현 과정에서 범죄자의 동의 절차를 밟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녀가 죽였다'는 AI 기술을 통해 팩트 기반의 사실적 묘사를 담아냈다. 덧붙여 악용의 소지가 있음을 우려해 AI로 재현된 목소리는 방송 이후 모두 폐기된다"고도 부연했지만, 시청자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기괴하다"는 떨떠름한 반응부터,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제작진 의도가 들어간 음성 및 영상이 공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효과가 있냐는 지적까지 나왔죠.
AI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들이 반드시 성공으로 귀결된다고 말하기엔 이른 시점입니다. AI로 작품 전체를 제작한 건 단편뿐이고, TV 방송은 특정 장면에만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죠.
그러나 업계에서는 향후 AI 기술이 영상 제작 환경을 뒤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영상 콘텐츠에서 AI 활용 스토리텔링의 선구자로 꼽히는 데이브 클락 감독이 "1년 이내에 100% AI 생성 영화 관람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AI 기술이 영상 콘텐츠에 미칠 파장은 클 것으로 예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