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개혁안 미제출…문재인 정부는 사지선다, 윤석열 정부는 '18개 시나리오' 제시
2008년 이후 정부의 국민연금제도 개혁은 ‘떠넘기기’의 반복이었다.
5일 정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1988년 이후 연금개혁은 단 두 차례 이뤄졌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와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국민연금 재정건전성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수급연령을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1차 개혁을 추진했다. 그나마 소득대체율·수급연령 조정 폭이 작고, 보험료율 인상을 수반하지 않아 1차 개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007년에는 소득대체율 인하(60%→40%)와 보험료율 인상(12.9%)을 동시 추진했다. 국회의 반대에 보험료율 인상은 무산됐지만, 소득대체율 조정으로 기금 소진 시기는 2047년에서 2060년으로 13년 미뤄지게 됐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2007년 개혁을 이유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제도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제3차 재정계산과 함께 ‘재정 안정화 방안만 뺀’ 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정부의 개혁안 제출이 '윗선'에 의해 막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는 2018년 제4차 재정계산과 함께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40%’ 등 3개 안을 초안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를 내세운 '윗선'의 압력에 현행 유지안을 포함한 사지선다형 개혁안을 제시했다. 초안의 ‘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40%’ 안은 국민연금을 유지하고 기초연금만 인상하는 기초연금 강화안으로 대체했다.
이런 상황은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23년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단일 개혁안’을 준비했으나, 국회의원 총선거 영향을 우려한 '윗선'의 반대로 개혁안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안(12·15·18%)과 수급 개시연령 상향안(65세→68세),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안(0.5·1%포인트(P))을 조합한 18개 재정안정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지선다 개혁안보다도 후퇴한 셈이다.
이런 상황은 ‘국민연금법’상의 한계에 기인한다. 법 제4조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대통령의 의사에 반해 개혁안을 낼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정부 책임론’이란 말은 ‘대통령 책임론’이란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문재인·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실패의 책임자가 연금개혁과 관련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연금 교사’로 활동하는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앞장서 정부 안 제시를 촉구하고 있고, 국민의힘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안상훈 의원은 ‘모수개혁 아닌 구조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와 안 의원은 각각 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 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책임질 위치’에서 내려온 뒤에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연금개혁을 외치는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