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솔직해도 됩니다

입력 2024-08-20 09: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뉴시스)

6일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다음 달 3일부터 현장에 투입된다. 시범사업 주체인 서울시는 매년 단계적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목적으로 ‘맞벌이 부모의 가사·돌봄 부담 완화’를 제시했다. 선정 현황을 보면 취지가 무색하다. 용산·성동구가 포함된 도심권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가 포함된 동남권이 신청 가구의 70.9%, 선정 가구의 69.4%를 차지했다. 서울에서도 소득수준이 높고 주택가격이 비싼 지역에서 신청·선정이 몰렸다. 이런 상황은 일찍이 예견됐다. 가사관리사 비용은 전일제 기준 월 238만 원이다. 맞벌이 부부 중 소득이 낮은 쪽이 최소한 300만 원은 벌어야 비용을 내고 용돈이라도 남긴다. 애초에 저소득층은 이용이 어렵다.

이쯤이면 시범사업 목적에도 의문이 든다. 맞벌이 부부 중 소득이 낮은 쪽은 대체로 여성이다. 지난해 하반기 여성 임금근로자의 73.5%는 임금이 300만 원이 안 됐다. 맞벌이 부부 대다수는 이용할 수 없는 가사관리사로 맞벌이 부부의 가사·돌봄 부담을 낮춘다는 건 모순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기존에도 가사관리사 수요는 주로 고소득층에 집중됐다. 그런데, 내국인 가사관리사는 비용부담이 높고 고령화로 절대적인 공급도 부족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은 이런 초과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정책이지, 보편적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부자용 정책’이란 비판을 피하겠다고 계속 ‘맞벌이 부모 가사·돌봄 부담 완화’, ‘저출생 대응’ 같은 다른 목적을 내세우면 정책이 꼬인다. 정책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면 구색 맞추기로 저소득층을 정책대상에 넣어야 할 것이고, 이 경우 비용부담 경감이 필요하다. 그 결과는 빤하다. 가사관리사를 고용하기엔 소득이 부족하고 비용 지원을 받기엔 소득이 많은 ‘애매한’ 중산층이 상대적 박탈감을 얻을 거다. 그렇다고 비용 지원 대상을 중산층까지 확대하면 가사관리사 사용이 필수로 인식돼 인식적 가사·양육비용을 높일 것이다. 그 끝은 더 심각한 저출산이다.

일부에선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낮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역효과가 더 크다.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들과 같은 업종·직종에서 일하는 내국인의 임금도 낮아진다. 사용자들은 싼 외국인을 두고 비싼 내국인을 쓸 이유가 없어서다. 저렴한 임금을 내세운 외국인 근로자와 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그들도 몸값을 낮출 수밖에 없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은 목적까지 바꿔야 할 ‘나쁜 정책’이 아니다.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차원에선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니 이제는 솔직해지자.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