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로봇 자체 개발로 4兆 절약
“로봇, 인류 위한 것…협력 중요”
“중국은 2015년 로봇 굴기를 천명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우보(Aubo), 유비테크(UBTech) 등 연간 매출 1000억 원 이상의 로봇 기업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융합을 주도하고, 일본은 제조로봇과 서비스로봇 강대국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도 경쟁력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제조로봇과 대한민국형 AI(인공지능) 분야를 키우고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
김진오<사진>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발전과 미래에 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로봇 전문가 중에서도 다양한 로봇 제작 경험과 통찰력(인사이트)을 함께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로봇산업협회는 1999년 설립한 로보틱스연구조합과 2003년 설립한 한국지능형로봇산업협회가 2008년 5월 통합한 조직으로 로봇 기업들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여 개 회원사와 함께 로봇산업의 산ㆍ학ㆍ연 포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세계 3대 로봇 강국 도약’을 목표를 세웠다. 이를 목표로 △정책지원 △전문인력 양성 △공급 및 수요 기업 간 매칭 △글로벌 진출 지원 등 회원사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야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산업ㆍ기업 맞춤형 인력 양성에도 한창이다.
로봇산업협회는 에리카(ERICA)에서 주관하는 실무인재 양성을 위한 ‘로봇직업교육센터 구축사업'에도 컨소시엄 참여기관으로 선정됐다.
로봇직업교육센터 구축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및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2028년까지 5년간 총 25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경기 안산시 일대에 연면적 5439㎡ 규모로 국내 최고 수준의 로봇직업교육센터를 구축한다. 제조로봇 시스템통합(SI), 서비스로봇 SI, 자율주행로봇, 로봇 소프트웨어(SW)ㆍAI 분야 교육과정(인재양성, 기업지원 트랙)을 운영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특히 전쟁사에 관심이 많던 그는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침략을 받고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이 분했다고 한다.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주국방에 관심이 많았고 K-방산의 일원이 되고자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친 김 회장은 미국 카네기멜론대가 세계 최초로 만든 로보틱스 박사과정에 첫 입학생으로 들어가 학위를 받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인류의 건강에 헌신할 길을 고민하던 그는 잠시 의료공학분야로 눈을 돌렸다.
김 회장은 “석사까지 열유체를 연구하다가 인공심장 개발을 시도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며 “다시 기계공학과에 돌아와 석사를 마친 뒤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로봇 분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로봇 시스템의 설계와 개발에 관한 혁신적인 접근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로봇 산업의 성장과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92년부터 1년 2개월간 세콤의 지능형시스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경비로봇을 제작하는데 몰두했다.
그는 “당시 세콤에서 경비로봇에 대한 연구는 평범한 일이었다”며 “일본이 1980년대부터 개호로봇(재활로봇이나 간호보조로봇)까지 연구하며 로봇으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이후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한국에 돌아온 김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초대 로봇개발팀장과 로봇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당시 삼성은 현대와 대우보다 늦게 로봇 사업에 뛰어든 시점이다. 회사 내 주요 사업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발전에는 고(故) 강진구 전 삼성전자ㆍ삼성전기 회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로봇을 활용해 반도체 공정 자동화와 제조업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고, 강 회장은 로봇사업부를 신설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리더십은 이른 시간 안에 로봇 사업을 성장시켜 삼성이 로봇 산업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김 회장은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은 로봇 도입에 회의적이었다”며 “강 회장이 사업부별 로봇 도입률을 평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서야 로봇 도입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는 반도체를 제작하기 위해 일본에서 지능형 모바일 작업로봇(Autonomous Mobile Manipulator Robot)을 대당 10억 원에 들여왔는데, 자체 개발에 성공해 7억 원을 아낄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개발한 400여 종의 기술로 4조~5조 원가량 외화를 절약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삼성전자에서 나온 김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부터 로봇 산업 정책 수립에 참여해 퍼스널 로봇 기반 기술 구축 과제를 기획했다.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10대 성장 동력 중 하나로 로봇이 선정됐고, 산업자원부 지능형로봇기획단장과 차세대성장동력추진 특위 지능형로봇분야 실무위원장, 그리고 2006년부터 로봇산업정책포럼 의장을 했다. 이후 로봇산업특별법 제정 등 로봇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2008년 로봇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죠셉 엥겔버그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 역대 엥겔버그상을 수상한 것은 김성권 한국공학대 메카트로닉스공학과 명예교수와 고 변증남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에 이어 김 회장이 세 번째다.
그는 우리나라와 K로봇의 발전을 위해 △국방 △제조 △AI 분야의 연구개발(R&D)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진들이 마음껏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법ㆍ제도적 장벽을 해소하고,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세 가지 분야를 로봇과 접목하기 위해 정부와 활발한 논의를 거치고 있다”며 “급격한 산업 트렌드 변화 속에서 기존에 우리가 잘하던 것을 더 잘 만들고 대응하기 위해 국방로봇협의회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봇산업협회는 이르면 이달 출범식을 열고 조직을 공식 발족한다. 출범 회의를 열어 향후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위원장과 간사직을 수행할 기업이나 기관도 선출할 예정이다. 박용운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고등기술원장이 준비위원장을 맡는다.
김 회장은 “로봇 기술은 어느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며 “중국과의 협력 등 국제적인 협력 방안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