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나?"
이른 아침 집을 나서니 쌀쌀해진 날이 체감됩니다. 올여름은 특히 오래 무더위가 지속됐던 만큼 급격히 찾아온 가을이 얼떨떨한데요. 발 빠른 이들은 겨울옷까지 장만하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기온이 떨어지는 중입니다.
이 말은 곧 트렌치코트, 카디건, 재킷(자켓) 등 가을에 입기 좋은,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아우터를 하루빨리 개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유를 부렸다간 롱패딩으로 중무장해야만 살아남는 겨울이 금세 닥칠 테니까요.
서늘한 날씨 탓인지 따뜻한 컬러, 특히 포근하면서도 차분한 매력의 브라운이 조명받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올 시즌 트렌드로 급부상한 아이템이 관심을 끄는데요. 바로 '스웨이드'입니다. 올가을 트렌드로 일찍이 예고됐던 탓에 런웨이에도, 패션 플랫폼에도, 길거리에도 속속 등장하는 중이죠.
재킷, 코트 등 옷부터 부츠, 가방 등 잡화까지 다양한 스웨이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는데요. 20여 년 전 유행했던 것 같은 스웨이드가 왜 올가을 핫한 트렌드로 떠올랐는지, 또 어떤 스타일링 방법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스웨이드(suede)는 양이나 소의 가죽에서 매끄러운 겉면을 제외하고 남은 안쪽의 부위를 가공해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스웨이드를 '세무'로도 부르는데요. 부드러운 촉감, 촘촘한 밀도가 특징이라 마치 벨벳 같은 느낌도 들죠.
가죽인 만큼 습기, 물에 취약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또 겉의 단단한 부분을 제거한 부드러운 부위라 내구성도 약한데요. 이에 꼼꼼한 관리는 필수죠.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요. 먼지가 묻었을 땐 솔이나 마른 수건을 이용해 결을 따라 살살 털어줘야 하죠. 오래 착용하고 싶다면 전용 방수 스프레이를 사용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제법 손이 많이 가지만, 스웨이드의 인기는 뜨겁습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서는 지난달 1~18일 스웨이드 재킷과 가방 등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00%나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스웨이드 관련 검색량도 488%나 늘었죠.
지그재그에서는 같은 기간 스웨이드 가방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1496%나 늘었고 거래액도 264% 증가했습니다. 스웨이드 재킷 검색량은 328%, 거래액은 64% 증가했죠. 에이블리에서도 지난달 1~15일 스웨이드 가방 검색량과 거래액이 모두 6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츠 검색량은 30%, 거래액은 350% 늘었는데요. 스웨이드 재킷의 검색량과 거래액도 각각 240%, 80% 증가했습니다.
지난달 1~18일 무신사 내 스웨이드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42% 증가했으며 그중에서도 스웨이드 가방 검색량은 456% 늘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8월부터 스웨이드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는데요. LF 여성복 브랜드 앳코너의 경우 8월부터 스웨이드 재킷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해 9월 2주 차에 초도 물량이 완판됐습니다. 가을 재킷 신상품 매출이 지난달 들어 전년 대비 20% 신장세를 기록한 가운데, 스웨이드 재킷은 50% 성장세를 기록했죠.
스웨이드가 새로운 소재는 아닙니다. 뇌리에서 잊혔던(?) '모카신'만 봐도 2000년대 유행했던 스웨이드 아이템인데요. 폭발적인 인기를 끈 뒤 꽤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로퍼, 운동화 등 신발로 스웨이드 소재가 조명받더니 올봄에는 재킷으로 유행이 이어졌습니다. 봄을 즐길 새도 없이 여름이 찾아오면서 스웨이드도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이는 잠깐이었죠. 더위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다시 스웨이드 아이템들이 속속 등장하더니, 올가을 1등 아이템이 된 모양샙니다.
그 인기가 단순히 소재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아직 맥을 잇는 '드뮤어'(Demure)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스웨이드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죠.
드뮤어는 지난여름부터 주목받은 트렌드입니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 크리에이터인 줄스 레브론이 게시한 영상에서 일종의 밈으로 확산했는데요. 레브론은 '직장에서 얌전한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자신의 출근 룩을 설명하며 '매우 얌전하고, 매우 신중하게'(Very demure, Very mindful)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도대체 '무엇이 드뮤어하고 드뮤어하지 않은 건지' 토론하는 장이 열렸고, 레브론의 대사는 일종의 밈으로 거듭났죠.
이는 화려하고 요란한 스타일에 지친 패션계에도 제대로 먹혔습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가 지난여름 발매한 정규 앨범 '브랫'(BRAT)으로 잠깐 빛을 발한 '브랫' 트렌드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패션계 주요 축을 담당하는 키워드는 '클래식'입니다. 과한 로고 플레이를 지양하는 대신 유심히 살펴야 알아볼 수 있는 럭셔리한 디테일,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을 단정하면서도 멋진 스타일링에 초점을 두는 건데요. 올해 내내 미니멀리즘, 오피스 웨어 유행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올드머니와 드뮤어는 한 끗 차이입니다. 올드머니가 클래식하면서도 럭셔리한 무드를 추구한다면, 드뮤어는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핏을 지향하죠.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로도 설명할 수 있겠는데요. 핵심은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하면서도 편안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드뮤어 트렌드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트렌드와 스웨이드는 찰떡궁합입니다. 스웨이드 아이템은 통상 절제된 디자인을 자랑하는데요. 장식이 적은 대신 소재감이 두드러져, 고급스러운 절제미가 '킥 포인트'인 지금의 트렌드와 스웨이드가 딱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죠.
스웨이드는 올가을 핫 트렌드로 일찌감치 낙점된 바 있습니다.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이미 적재적소에 스웨이드를 사용하면서 눈길을 끌었죠.
프라다는 지난해 가을·겨울(F/W) 컬렉션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스웨이드 재킷을 출시했고요. 이자벨 마랑, 끌로에, 미우미우 등은 올해 2024 F/W 컬렉션에 이어 2025 봄·여름(S/S) 쇼에서도 부츠, 스커트 등을 다수의 스웨이드 제품을 선보였죠.
특히 미우미우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S 컬렉션 쇼에서 앰배서더인 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착장으로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장원영은 화려한 플라워 패턴에 화이트 칼라, 퍼프 소매 등 귀엽고 낭만적인 디테일이 가득한 미디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여기에 여유로운 핏의 가죽 장갑, 차분한 브라운 컬러의 스웨이드 가방을 매치하면서 매력을 더했는데요. 해당 착장에 대해 온라인상에서는 "공주님 같다"는 감탄이 이어졌습니다.
또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미연은 크롭톱, 미니스커트 위에 스웨이드 재킷을 걸치면서 시크한 매력을 뽐냈고요. 배우 이청아는 부드러운 실루엣의 초콜릿색 블레이저와 팬츠를 입고 스웨이드 숄더백을 더해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더했습니다.
많은 스타의 착장에서 알 수 있듯 스웨이드의 브라운 컬러는 다양한 얼굴을 지녔습니다. 붉은빛의 브라운 컬러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트렌디한 컬러로 주목받는 코코아 빛 브라운은 모던한 느낌을 주죠.
스웨이드 아이템으로 다양한 무드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편안한 실루엣과 함께 히피 문화가 떠오르는 보헤미안 스타일, 카우보이 모자, 벨트를 연상케 하는 웨스턴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에도 제격인데요. 색다른 무드를 선보일 수 있는 만큼, 추운 겨울에도 스웨이드의 인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