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신 BIFF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넷플릭스 아닌 작품 자체를 보고 결정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 중 4일 부산시 해운대구 파크하얏트 부산에서 진행된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5 한국 영화' 행사에서 남궁선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세상의 끝', '십개월의 미래' 등 다양한 작품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남 감독은 내년 넷플릭스에서 첫 상업영화 '고백의 역사'를 공개한다. 그는 "넷플릭스 초창기 서비스 때부터 기억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넷플릭스는 남 감독을 비롯해 연상호, 변성현, 김병우, 이태성, 한지원, 김태준 감독 등을 한 자리에 초청해 내년 넷플릭스 한국영화 라인업을 공개했다. 국내 최대 영화제인 BIFF에서 OTT 플랫폼이 내년 라인업을 소개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내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사마귀'를 선보일 예정인 이태성 감독은 넷플릭스에 대해 "굉장히 탄탄하고 조직력이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라며 "요즘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영화를 보는 방식에 특화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첫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기대를 높이고 있는 한지원 감독은 "넷플릭스와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회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프로젝트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뜻깊다"라고 말했다.
'불한당', '길복순', '킹메이커' 등의 영화를 통해 남다른 연출력을 선보였던 변성현 감독도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변 감독은 "넷플릭스와 작업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창작자에 대한 지원이 너무 좋다는 것"이라며 "또 시청자들의 리액션을 바로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 생소하고 신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BIFF의 개막작이자 최대 관심작이었던 강동원·박정민 주연의 영화 '전,란'도 넷플릭스 영화다. BIFF가 OTT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IFF는 그간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해왔다. 지난해 개막작은 장건재 감독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였다.
박도신 BIFF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좋았다. '청불'은 모험이지만, 해볼 만한 모험이었다"라며 "이번엔 대중성을 생각했다. 넷플릭스 영화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작품 자체를 보고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BIFF의 이 같은 결정에 넷플릭스에서 영화와 시리즈 부문을 담당하는 김태원 콘텐츠팀 디렉터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해 주셔서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화려한 검술 등 웅장한 사극 액션이 주요 관람 포인트인 '전,란'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 수 없다. 이벤트 차원에서 극장 상영을 고민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디렉터는 "구독자들이 서비스를 즐기시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BIFF를 통해) '전,란'을 큰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한 경험은 너무 좋았다"라면서도 "극장 상영은 번외로 할 고민"이라고 답했다.
넷플릭스는 올해 BIFF에서 내년 라인업 공개를 비롯해 전방위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주변 카페를 빌려 '넷플릭스 사랑방'을 열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영화 담당 기자들과 제작, 유통, 배급 관계자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CJ ENM 역시 자회사 OTT 플랫폼인 티빙을 통해 공개 예정인 콘텐츠 '좋거나 나쁜 동재', '내가 죽기 일주일 전' 등을 BIFF에서 먼저 선보였다. 아울러 4층 규모의 콘텐츠 체험 공간으로 조성된 팝업을 설치해 관객들이 티빙 작품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각종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어떻게 보면 순수한 극장용 영화보다 OTT 콘텐츠의 홍보에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BIFF가 개막작을 넷플릭스 영화인 '전,란'으로 선택한 것은 그만큼 영화 산업 지형과 관객의 관람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BIFF의 정부 지원금이 지난해 12억 원에서 올해 절반으로 줄었다"라며 "BIFF가 OTT를 적극적으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이 같은 예산 삭감 문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