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7만 명 중 단 94명. 은행의 별이라고 불리는 부행장의 숫자다. 이들은 각자의 직무 전문성과 리더십으로 각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최근 내부인사 출신 은행장을 선임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부행장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지난 3월 김광수 신한은행 고객솔루션그룹 부행장을 시작으로 7개월 동안 16명의 부행장을 만났다. 은행의 별이라는 말에 걸맞게 인터뷰 내내 이들의 눈은 반짝였다. 맡은 사업에 대한 열의와 삶에 대한 자긍심, 후배를 향한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응원 등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성공 비법’을 살펴봤다.
최소 30년을 은행에 몸담은 16명의 부행장은 경력을 쌓는 데 있어 ‘현장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객 중심으로 업무를 처리하려면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소통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입행 30년 만에 현재의 자리에 오른 김광수 부행장은 지역 본부장과 기관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관리와 소통에 탁월한 역량을 보유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현장 접점에서 고객을 만나 상담하고 어려운 점들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 고객 관점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들과 수요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다양한 고객을 만나 금융업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 보니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했다.
KB국민은행이 일선 영업현장에서 뛰어난 성과와 리더십을 보여온 손석호 부행장에게 영업그룹을 맡긴 건 영업 현장 강화를 위해 포석이다. 손 부행장은 “지주 회장님(양종희 KB금융 회장)과 행장님(이재근 KB국민은행장)의 경영 철학이 현장을 우대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고객을 우대하기 위해 현장을 우대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금융’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현장에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겪을 터. 이에 굴복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30년 이상 현장을 누빈 이해원 iM뱅크 영업지원그룹 부행장은 퇴짜 놨던 거래처가 돌아온 경험을 가장 인상 깊은 순간으로 꼽았다. 그가 철강 관련 중견기업을 방문했을 당시 회사 앞 보수 공사를 하는 곳에 발이 빠져 시멘트 범벅이 됐다. 이 부행장은 급하게 대처한 후 미팅을 강행했다. 이를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평가한 기업 대표는 은행 3곳에 맡겼던 건을 iM뱅크로 옮겼다.
영업 현장과 본사 어디에 있든 이들의 ‘고객 사랑’은 극진했다. 항상 고객 입장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 최민성 Sh수협은행 기업그룹 부행장은 본사와 영업 현장, 양쪽에서 기업금융의 경험을 두루 쌓아왔다. 그는 “부행장 직책 이전 심사부서장을 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서 “당시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고객과 영업점의 고충을 해결하고 고객 니즈를 충족시켰을 때는 다른 무엇보다 업무 만족도가 높았다”고 회상했다.
이강영 농협은행 개인디지털금융부문 부행장은 “농협은행은 농업을 지켜온 농업인 조합원의 농협에 대한 마음과 5000만 국민의 성원으로 성장한 은행인 만큼 이를 최대한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며 ‘고객 가치’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도 필수다. 입행 당시 남성 행원의 업무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여신, 외환, 대부 업무를 맡기 위해 정현옥 우리은행 금융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은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부를 최대한 많이 해야 고객을 제대로 응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다”면서 “반성 역시 성장하게 한 노력이었다. 영업 중 고객에게 거절당했다면 좌절하기보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되짚어보고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을 바탕으로 업무 영역을 넓힐 것도 당부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전산 통합 당시 외국환 IT 통합을 총괄한 박태순 하나은행 ICT 그룹 부행장은 “업무의 경계를 넘어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금융 전산시스템은 복잡하고 상호 연결돼 있으므로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큰 경쟁력”이라고 조언했다.
이들의 배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인태 IBK기업은행 혁신금융그룹 부행장은 항상 배움에 목마르다고 했다. 김 부행장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심사역들을 초청해 현재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투자 심사 관점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듣고 시야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움을 통해 새로운 것을 향한 시도도 멈추지 않는다. 김영훈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 부행장은 하나은행을 '자산관리 맛집'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항상 새로운 메뉴를 항상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도 도전적인 시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서 "플래그십 스토어, 비대면 인공지능(AI) 자산관리, 유언대용 신탁 등은 하나은행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들이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임수한 신한은행 디지털솔루션그룹 부행장은 “디지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영역”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빠르게 등장하는 가운데, 우리는 언제나 미지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