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실질적인 사업을 담당하는 집행 임원인 부행장들은 후배 행원들에게 은행업의 본질은 '신뢰'라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인공지능(AI) 행원이 등장한다는 디지털 시대에도 자금을 '중개(仲介)'하는 은행업의 특성상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업금융(IB) 1세대로 하나은행의 투자금융 부분을 이끌어온 전호진 하나은행 IB그룹 부행장은 "고객과 신뢰가 없으면 거래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서 후배 행원들에게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자산’이 중요하다고 수시로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금리나 조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신뢰 관계가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 행장은 “하나은행이 타행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이유는 외국계와 딜을 많이 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와 오랜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을 성사시킨 바 있는 이동훈 수출입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은 “당시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로 시장불안이 커지는 상황이었지만 한국 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면서 “무엇보다 채권시장에서 꾸준히 쌓아온 수은의 신뢰도를 믿었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권에 불거진 내부통제 이슈와 관련해서도 은행원으로서 가져야 할 신뢰라는 원칙을 갖고 기본에 충실할 경우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부행장들은 조언했다.
IBK기업은행에서 33년 간 근무하면서 개인여신부장, 여신기획부장을 거쳐 지난해 1월 여신운영그룹장에 임명된 '여신통' 권용대 기업은행 여신운영그룹 부행장은 "세상은 계속 바뀌지만 근본으로 들어가면 기본에 충실하고 금융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며 "금융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소탐대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겸청즉명(兼聽則明)' 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낸 정진호 국민은행 DT추진본부 부행장은 "여러 측면의 말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두워진다는 말로 균형있는 소통의 자세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기민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서승현 신한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도 후배 행원들에게 '소통의 힘'을 강조했다. 임원이 된 후 모든 희망 사항과 의견을 수용할 수는 없더라도 ‘늘 귀 기울이고 있다’는 소통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서 부행장은 "30년 간 근무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소통이고 은행업의 성공 열쇠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성희 KB국민은행 자본시장사업그룹 부행장은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그는 "소통에 있어 중요한 것이 ‘I may be wrong(나도 틀릴 수 있다)’라는 자세"라며 "좋은 답을 찾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