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13일 밤에 날아든 메일 한 통을 열어본 KT&G 임직원들의 반응을 유추해보라면 아마 이와 같았을 것이다. 발신자는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였다. FCP는 KT&G 자회사인 KGC한국인삼공사(인삼공사) 지분 100%를 1조9000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투자의향서(LOI)를 KT&G 이사회에 발송했다. FCP는 해당 가격이 방경만 KT&G 사장이 지난해 투자설명회(Investor Day)에서 적정가로 밝힌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7∼8배(1조2000억~1조3000억 원)의 150%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FCP의 인수 제안 논리는 간명하다. 담배회사가 인삼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FCP는 2022년부터 꾸준히 KT&G를 상대로 인삼공사를 매각 또는 분할 상장,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인삼공사의 기업 가치가 KT&G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인삼공사는 1999년 KT&G가 홍삼 사업 부문을 현물 출자해 100% 자회사로 설립한 회사로, ‘정관장’이 대표 브랜드다. 지난해 매출 1조 3691억원, 영업이익 1031억원을 기록한 알짜 회사다. KT&G는 “(FCP가 인수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이라며 ‘매각 의사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이상현 FCP 대표는 “키울 능력은 없지만 남 주기 아깝다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당연한 의문점 하나. FCP가 밝힌 1조9000억 원의 인수자금은 과연 어떻게 조달할 수 있냐는 점이다. FCP는 인수 제안서에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을 명시하지 않았다. 결국 ‘아님 말고 식’ 제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며칠 뒤 FCP는 이미 기관투자가들의 투자확약서(LOC)까지 받아둔 상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FCP가 인삼공사를 실제로 인수할 ‘실탄(자금)’을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며, KT&G에 호의적인 다른 많은 주주들이 여기에 찬성표를 던질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FCP같은 행동주의펀드는 그동안 오너 체제 하에 투명하지 않은 경영을 해온 일부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행동주의펀드의 비신사적 행동은 도를 넘은 상황이다. KT&G만 해도 일요일 밤에 FCP의 인수 제안서를 받으면서 월요일 새벽부터 임원진은 혼비백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IB업계에서는 평일이 아닌 휴일에 대형 의제인 인수 제안서를 보내는 것부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이런 사례는 결국 행동주의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행동주의펀드가 단기 주가 부양에만 매달려 이사회와 경영진을 위협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몇몇 행동주의펀드는 지배구조 개선 명분을 앞세워 기존 이사회와 경영진을 갈아치운 뒤 주가가 오르면 막대한 시세차익만 챙기고 떠나기 일쑤였다.
KT&G는 이미 경험자다. 2006년 2월 KT&G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연합으로부터 인삼공사 상장, 유휴부동산 처분, 주주환원책 강화 등을 요구받았다. 투자자를 향해 주당 6만원의 공개매수를 제안하고 주식 매집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KT&G가 제안한 ‘마스터플랜’에 최종 합의, 1년여 만에 보유지분을 분산 매각하고 1500억 원의 차익을 얻고 유유히 사라졌다. 주목할 점은 이상현 FCP 대표가 기업 인수, 매각을 통해 시세차익을 크게 얻는데 능한 칼라일그룹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2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밝힌 ‘행동주의 캠페인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눈길이 간다. 이 보고서는 행동주의펀드가 경영에 개입하면 기업가치가 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한경협은 2000년 이후 행동주의 캠페인을 겪은 미국 상장사 970개사의 기업가치 변화를 분석했다. 행동주의 요구가 관철된 기업들은 기업가치가 1~3년 뒤 1.4%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4년 이후엔 캠페인 성공 이전보다 더 떨어졌다. KT&G를 향한 FCP의 인수 제안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