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2일 ‘반도체 5대 강국의 수출입 결합도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공급망을 진단하고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메모리반도체는 한국, 시스템반도체는 대만과 긴밀한 생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과 한국의 메모리반도체의 수출결합도(기준점 1) 지수는 2.94이다. 대만의 경우 시스템반도체가 2.30으로 높다. 수입결합도도 한국(메모리 2.28, 시스템 2.21), 대만(메모리 1.50, 시스템 1.29), 일본(메모리 1.44, 시스템 2.05)과 상호 보완성이 높았다. SGI는 “미국의 우방국 중심 공급망 재편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 갈등 심화를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힘든 도전적 현실이다. 미국은 반도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우방국을 향한 대중국 반도체 제재 동참 압박도 거세다. 내년에는 중국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지금의 2배인 50%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중국도 지난해 반도체 소재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한 데 이어 12월부터 강화된 수출통제 규정을 시행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전쟁 치르듯 격화하는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보조금은 강력한 무기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보조금으로 총 390억 달러(약 53조2000억 원)를 지원 중이다. 대출과 보증으로 750억 달러(약 102조3000억 원)를 추가 지원하고 최대 25%의 세액공제도 제공한다. 삼성전자(약 8조7000억 원), 인텔(11조6000억 원), TSMC(9조 원), 마이크론(8조3000억 원) 등이 혜택을 받고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연합(EU)은 430억 유로(63조5000억 원)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중국, 일본도 자국 대표 기업에 수조~수십조 원을 퍼주고 있다.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지원 방안을 내놨다. 최근에는 후속 조치로 4조7000억 원의 금융 지원을 포함해 8조8000억 원을 생태계 조성에 쓰겠다고 했지만, 경쟁국들에 비해 초라한 게 사실이다.
반도체는 안보적 관점에서 날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곧 있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강화할 게 자명하다. 디커플링 압박강도가 세질수록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피할 수 없다.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역대 산업부 장관들이 지난주 한국경제인협회 초청 대담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위기를 우려했다고 한다. 보조금, 직접 환급제, 전력 인프라 확충 등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국회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