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는, 그의 일생에 흥미를 갖고, 전기를 쓰는 작업에 몰입하였다. 책의 서두에선, 강박적일 정도로 자연 탐구에 열정을 보이던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학문적 업적에 대한 의문과 인격적 결함을 폭로하면서, 책의 내용은 놀라운 반전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책 후반부에, 저자는 조던이 평생을 바쳤던 두 가지 학문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하며, 독자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먼저 ‘어류분류학’에 대해 비판한다. 분류라는 개념은 매우 인위적이며, 실제 자연은 명확히 경계가 나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우생학’에 대해 심한 비난을 가한다. 그가 생물을 분류하면서, 종의 우열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설파했다고 지적한다. 룰루 밀러의 책이 발간 된 후, 스탠퍼드대는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지우는 조치를 했다고 한다.
저자의 비판은 논리적으로 매우 타당하다. 분류학은 인위적인 것이다. 생물의 진화는 연속적이지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종의 분류는 항상 경계종이 발견될 때마다 혼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우생학’은 종에 우열을 구분하는 것인데, 이것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 우울증이 그렇다. 진화사적으로 보더라도, 힘겨루기에 패한 어떤 선조가, 동굴에 숨어 회복될 때까지 지내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 적응이었을 것이다. 조현병은 또 어떠한가. 선사 시대에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샤먼이 부족을 이끌었던 제사장 계급이었다.
하지만, 저자 또한 조던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가치관-다양성 인정’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 저자는 자신이 양성애자인 것이 자연이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호하면서도, 조던에 대해서는 존재해서는 안 될 악으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기 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꾸짖으면서 본인은 옆으로 걷고 있는 것을 모르는 엄마 게’의 우화가 생각난다. 이것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태생적 한계이리라. 저자도 그렇고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