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의 회계 공시 참여율이 1년 만에 고꾸라졌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시 대상인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와 산하조직 733곳 중 666곳(90.9%)이 2023 회계연도 결산 공시를 마쳤다. 최종 공시율은 제도 도입 첫해인 지난해 91.5%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각에선 조직적 이탈세가 두드러진다.
총연합단체별로 한국노총 소속은 282개 대상 노조 중 277곳이 수입과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공시율은 98.2%로 작년보다 3.2%포인트(p) 증가했다.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노조도 116곳 중 108곳이 참여해 93.1%의 공시율을 보였다. 1년 전 76.4%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반면 민노총 소속은 335개 대상 노조 중 281곳(83.9%)만 참여해 공시율이 10.3%p 감소했다. 회계 공시가 노조 통제 수단이라며 반발하는 금속노조와 소속 43개 지부·지회가 불참한 탓이다. 기아지부가 지난해에 이어 거푸 빠졌고, 현대자동차지부도 1년 만에 공시 거부로 돌아섰다.
노조 회계 공시는 운영 투명성과 조합원·국민의 알 권리를 높이고자 도입됐다. 강제성은 없지만 불참 시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의 15%(1000만 원 이상 시 30%)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진다. 다수 조직이 공시에 응하는 것은 조합원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금속노조는 다르다. 회계 공시가 노조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일찍이 불참을 선언했다. 양대 노총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매년 수십억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2018~2002년 5년간 1500억 원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부금으로 인정한 조합비 세액공제도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노조원들이 매달 월급에서 낸 조합비가 어찌 쓰이는지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회계 장부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금속노조는 더더욱 공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처지다. 공시 기준 조합비 수입 규모가 595억 원(2022년 기준)으로 가장 많다. 현대차지부가 228억 원으로 2위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조합비 횡령, 유용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이 우리 노동운동 현실이다. 회계 공시를 안 하면 장부를 공개하지 못할 속사정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번질 수밖에 없다. 불투명성의 업보다. ‘깜깜이 회계’로 돌아가려는 이들은 왜 공시가 탄압인지부터 명명백백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불투명한 회계 처리를 어찌 믿을 수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런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 공시 거부는 윤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해외 선진국들은 노조 회계 감시망이 촘촘하다. 미국은 노조의 연차회계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한다. 모든 조합원이 회계 관련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다. 영국은 노조가 제출하는 연차회계보고서에 대차대조표, 현금흐름표 등 세부명세까지 공개하도록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이면 외부 감사가 의무다. 프랑스도 지출 사항에 명확한 근거를 남기도록 한다. 왜 우리 노조 문화는 달라야 하나. ‘깜깜이 회계’를 원하는 이들은 알아듣기 쉽게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