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머니 시대
직장인 임대성(30)씨의 지갑에는 현금이 단돈 만원뿐이다. 그나마도 거의 사용할 일이 없다. 아침에 출퇴근 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T머니를 사용한다. 점심식사도 구내식당을 주로 이용하는데 전자태그(RFID)가 탑재된 사원증 덕분에 현금이 필요없다. 구내식당 이용요금은 마치 신용카드로 외부 식당에서 밥값을 결제한 것처럼, 월말 신용카드 요금 고지서로 청구된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할 때도 신용카드 결제나 꼬박꼬박 모아둔 포인트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친구나 동료에게 모바일 상품권으로 선물을 주고받아 선물을 고르는 고민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해가 저물가는 2010년 12월, 현대인들의 지갑에 속에 ‘사이버 머니’ 자리잡아 가고 있다.
◇날개 단 ‘사이버 머니’= 얼마 전 미국의 보도전문 채널 CNN은 가상화폐인 사이버 머니가 실물경제를 움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나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 구매나 선물 등을 위해 사이버 머니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인디애나대학 카스트로노바 교수는 “가상 통화로 환전되는 실제 돈의 가치는 생각보다 엄청나다”며 “매년 온라인 이용자들이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사이버 머니로 바꾸며 이중 대부분은 온라인 게임에 사용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대법원이 인터넷 게임에서 발생하는 아이템 거래에 대해 일부 합법 판결을 내린 이후 게임 아이템 거래가 최대 1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머니가 양성화되고 싸이월드 도토리 등장 이후 부진했던 약 2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사이버 머니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조짐이다.
전자화폐인 사이버 머니는 통상적으로 ‘사이버 캐시’, ‘e캐시’, ‘e머니’, ‘인터넷 선불카드’, ‘전자적립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버 머니는 대부분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이 회원들에게 가입보너스나 적립금, 누적 포인트, 마일리지, 전자쿠폰등의 형태로 지급하는 가상화폐다.
최근에는 인터넷 온라인 게임사이트나, SNS 서비스에서 아이템 구매나 아바타 구매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조 SNS 서비스 싸이월드의 도토리도 사이버 머니의 일종이다.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인류 탄생이후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화폐는 탄생됐다. 초기의 단순한 교환의 매개체로 출발해 금·은으로 만든 고가의 화폐가 등장하면서 화폐 스스로의 가치가 높아지게 됐다. 또한 국가마다 화폐를 발행하고 있지만 원화와 달러화의 교환은 1대 1이 아니다. 화폐역시 해당 국가의 프리미엄이 반영돼 외환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현급이 사라지고 있다(?)= 화폐는 IT경제의 활성화함께 새롭게 변신을 꿰하고 있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많은 양의 현금이 이동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 직장인에게도 월급봉투가 사라진지 오래다.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조회, 이체가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세상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가상의 공간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상의 신용거래이다. 그러나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이버 머니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실제 세상에서는 존재 하지 않는 사이버 상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사이버 머니를 실제 돈으로 교환해 주는 환전상도 등장했다.
올해 휴대폰으로 결제하는 전자상거래 규모는 2조원 이상으로 전망된다. 휴대폰결제 전문기업 모빌리언의 분석결과를 보면 지난해 휴대폰 결제시장 규모는 1조8300억원이었다. 지난해 휴대폰 결제 거래액의 70%인 1조2900억원이 디지털콘텐츠 거래 분야에서 발생했다. 실물거래 시장 규모는 5400억원으로 30% 남짓.
이는 온라인 오픈마켓, 인터넷 쇼핑몰, 도서, 티켓 등 실물거래 영역에서 휴대폰 결제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IT업계는 물론이고 전산업 분야에서 휴대폰을 사용한 전자결재가 활성화 될 전망이다.
사이버 머니가 차세대 화폐로 떠오르면서 사이버 머니의 진화도 다양하게 진행 되고 있다. 최근 소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소셜커머스 사업이 떠오르면서 소셜머니가 등장했다. 소셜 머니는 사회적 네트워크 관계를 맺은 상호간에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매개수단으로 사용되는 공동체 화폐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이버 머니를 교환하며 서로 봉사 활동을 주고받는 'e-품앗이' 서비스를 지난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나눔문화 확산과 시민 상호 간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상부상조하는 품앗이의 전통을 IT기술로 활용한 것이다.
‘e-품앗이’는 사이버 머니를 통한 거래를 바탕으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각종 봉사 서비스를 나누는 시스템이다. 이웃집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 활동이나 장난감 대여 등의 봉사 서비스를 제공하면 사이버 머니를 얻는 반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봉사 서비스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으면 사이버 머니가 줄어드는 방식이다.
거래되는 봉사 서비스 내용과 사이버 머니는 거래 당사자들이 직접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 시민들끼리 이루어지는 '봉사 거래'는 게시판을 통해 내용이 공개되고, 사이버 머니가 쌓이면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도 있게 된다.
서울시 황치영 복지정책과장은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던 선조들의 품앗이 정신을 활용해, 봉사 활동을 하면 자신도 필요로 하는 봉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봉사 서비스를 통해 얻은 사이버 머니를 활용해 각종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설날 세뱃돈도 사이버 머니로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주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자문=한국인터넷진흥원 민경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