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각 버티던 동부 백기…명분에만 집착, 시장 특수성 무시 우려
홍기택 KDB산은지주 회장<사진>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취임 1주년 맞은 홍 회장은 그 동안 ‘정책금융 맏형’역할을 강조하며 신속한 기업구조조정 의지를 피력해 왔다.
그러나 동부, 현대그룹 등 구조조정 기업들이 내놓은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헐값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홍 회장의 대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속도’다. 그는 부실 징후가 있을 때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다. 부실 대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 안전판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산업은행의 리스크 관리를 통한 수익 증대도 동시에 이뤄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홍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산업은행은 13년 만에 1조4500억원의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대기업 부실 때문이다.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있어 신속한 매각으로 추가 자금지원 부담을 덜고, 자금 회수를 통해 수익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대기업 구조조정이 산업은행 주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헐값 매각 시비를 거론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던 동부그룹은 최근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매각 방식을 채권단에 일임한다며 산업은행에 백기를 들었다. 개별 매각 계획을 접고, 일괄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현대그룹 구조조정은 동부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3일 현대증권의 신속한 매각과 유동성 공급을 위해 현대상선에 2000억원을 대출했다. 현대상선은 그 대가로 현대증권 지분 14.9%를 신탁했다. 산업은행은 이미 현대상선과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현대증권 매각에 나선 상태다.
이 처럼 홍 회장 취임 1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조조정에 속도감이 붙은 것이다. 과거 산업은행은 STX, 웅진, 동양그룹 등 구조조정 있어 신중한 입장을 취하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많았다. 강 전 회장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고용 안정 보장 등에 무게를 두며 신중론을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선 홍 회장이 명분에만 집착해 시장의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 정부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해 구조조정에 속도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홍 회장 구조조정의 핵심은 속도, 동부나 현대그룹 구조조정이 늦어질 경우 현 정부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홍 회장 정치적 성향이 기업 구조조정에 묻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