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홍명보 감독은 가용 가능한 최강의 전력을 구성하기 보다는 백업 멤버들 중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 모든 것을 노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홍 감독의 의중이다. 홍 감독은 "월드컵 상대팀 중 누군가는 경기를 보러올 것이고 이들에게 모든 것을 노출하며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고 설명했다.
물론 말 그대로 평가전인 만큼 어떤 선수를 기용할 것인지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최종 엔트리를 선발할 때와 마찬가지다. 이번 평가전에서의 승리가 월드컵 본선에서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아닌 만큼 선수 보호 차원에서도 부상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실제로 대표팀 선수들 중 부상 여파로 몸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선수들도 적지 않다.
다만 상대팀의 누군가가 경기장에서 본다고 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분명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대 축구는 정보전이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어 몇 개만 입력해도 어지간한 팀의 경기 영상은 수집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미 한국이 치른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는 물론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뛰었던 경기 장면 등은 이미 상대팀들의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돼 있다. 한국이 이미 러시아, 벨기에, 알제리 등에 대한 다양하고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2주 남짓 밖에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이 같은 데이터를 구축하지 않았다면 단지 참가에 의의를 두는 팀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H조 속한 팀들 중 '단지' 참가에만 의의를 둔 팀은 없어 보인다.
튀지니와의 평가전은 한국이 튀니지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얻느냐도 중요하지만 승리한다 해도 어떻게 승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당장의 결과는 장도에 오르는 대표팀의 사기와 관계가 있지만 어떻게 이기느냐는 월드컵에서의 선수단 운용과 직결된다.
홍 감독은 일단 최강의 멤버를 구성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노출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주전 선수보다는 백업 자원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경기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홍 감독의 머릿 속에는 이미 주전과 백업의 구분이 서 있다는 뜻이다. "대표팀에서 주전과 비주전의 구분은 없다"고 말해왔던 홍 감독이지만 23명으로 구성된 대표팀을 운영하면서 주전과 비주전의 구분없이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별라운드 3경기에서 모두 다른 멤버를 내세울 수는 없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팬들조차 이를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튀니지전은 백업으로 분류된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월드컵에서 만족할 만한 플레잉 타임을 얻기 원한다면 이 경기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따라서 최종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더 큰 꿈을 꾸는 선수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경기다. 이미 백업 자원으로 분류한 선수라 할지라도 홍 감독은 이 경기에서의 활약과 미국에서의 전지훈련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한 주전과 비주전의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하고 현명한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