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vs 눈물난다 2015
월 드 콘 : 300원 → 1500원
치 킨 : 4500원 → 1만 5000원
영 화 : 3000원 → 1만원
담 배 한 갑 : 500원 → 4500원
빅 맥 세 트 : 2400원 → 6100원
오 락 실 게 임 : 100원 → 500원
택 시 기본요금 : 600원 → 3000원
최 저 시 급 : 462원 → 5580원
은 마 아 파 트 : 5000만원 → 11억 5000만원
바나나 한 송이 : 7000원 → 1800원!
물가상승. 거시경제학의 기본입니다. 모든 재화와 용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의 가치에 따라 가격이 오릅니다. ‘응답하라 1988’ 속 300원짜리 월드콘은 2015년 현재 1500원에 팔리고요. 정환이가 덕선에게 사주던 맥도날드 빅맥 세트는 3배 가까이 가격이 뛰었습니다. 동일이 피던 담뱃값도, 정봉이가 즐겨 찾던 오락실 게임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2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유일하게 가격이 내린 게 있습니다. 바로 선우 엄마가 살까 말까 망설이던 바나나 입니다. 1988년 바나나 한 송이(1kg) 가격은 7000원이었습니다. 당시 최저 시급으로 따지면 15시간, 이틀을 꼬박 일해야 먹을 수 있는 ‘금과일’이었죠.
지금은요? 그 시절에 비하면 엄청나게 쌉니다. 시장가면 천 원짜리 한두 장에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저희 동네 슈퍼마켓 전단인데요. 다음 주 수요일 세일품목 보이시나요? ‘바나나 1800원’이 떡하니 쓰여 있습니다. 비록 미끼상품이긴 하지만 가격이 참 착합니다.
바나나값 역주행의 시작점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바나나를 포함한 수입 과일은 ‘구상무역(Barter Trade)’ 형태로 수입됐습니다. 구상무역이 뭐냐고요? 수입대금을 제품으로 지급하는 무역거래를 말합니다. 협정을 맺은 나라에 한해서요. 필리핀으로부터 바나나 받으면 한국에선 귤 주는 식이죠.
바나나가 수입자유화 품목에 포함된 건 1991년입니다. 1967년부터 시작된 수입무역이 자유화 체제에 뒤늦게 합류한 셈이죠. 이때부터 바나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가락시장 거래 청과물 절반 이상 수입 바나나> 1991년 4월 15일 자 경제지 19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1월부터 3월까지 바나나 거래량이 2만 2000톤에 달한다고 보도했네요. 1990년 한해 거래량(5900톤)을 3개월 만에 3배 이상 앞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나나 수입 파동 후 수입 과일은 끝도 없는 ‘바겐세일’에 들어갑니다. 1997년엔 오렌지가 수입자유화 품목에 포함됐고요. 2004년 칠레와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포도값이 내려갔습니다. 2011년 7월 EU와 FTA 체결 뒤엔 이탈리아산 키위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12년 한·미 FTA 시행 후에는 체리 수입량이 부쩍 늘었죠. 호주(2013년 12월), 캐나다(2014년 3월), 뉴질랜드(2014년 11월)와 맺은 FTA도 수입 과일들의 가격을 떨어트렸습니다.
바나나→오렌지→키위→체리의 역사를 잇는 수입 과일은 망고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2년 1300만 달러(147억원)에 머물던 망고 수입액은 지난해 4300만 달러(486억원)로 2년 만에 80% 넘게 급증했습니다. 최근 3년간 열대과일 중에 연평균 수입액이 가장 많이 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가격은 착하지 않습니다. ‘이마트몰’에 들어가 망고를 찾아봤더니 2개들이 한 팩에 1만 2800원이라네요. 3kg짜리 카라바오 망고는 3만 8300원이나 합니다. 몇 해 전 필리핀에 여행 가서 아침, 점심, 저녁 망고만 먹어 대던 때가 생각나네요. 당시 동행과 함께 ‘이 정도면 여행 본전 뽑았겠다’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10년 뒤엔 망고도 바나나만큼 싸질 겁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한ㆍ베트남 FTA 비준 동의안에 망고의 단계적 관세 철폐 내용이 담겨있거든요. 대형 마트에서나 파는 '열대과일의 왕' 두리안도 2025년엔 흔한 과일이 될 거라고 하네요.
여기서 잠깐. FTA 역사와 함께 수십 년간 대표 과일로 사랑받았던 바나나. 그런데 이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이라는 곰팡이 때문이라고 하네요. 미국 연구진이 대체할만한 품종을 찾고 있는데 어렵다고 합니다.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처럼 바나나가 다시 세 개에 2000원으로 오르는건 아닌지 걱정입니다.아무래도 오늘 퇴근하는 길엔 바나나를 사 들고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