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의 한진칼 경영권 공격에 대비해 ‘백기사’를 물색하고 있다. KCGI가 경영권 장악 의도는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한진그룹은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 자문사와 접촉,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서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해 백기사 찾기가 쉽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모펀드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우호 세력이 등장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삼성증권 등 자문사를 통해 사모펀드(PEF)와 기관투자자 등에 주식 매입가를 보장해주는 조건을 내걸고 한진칼 주식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몇 군데 자문사를 후보로 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영참여형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만든 KCGI제1호사모투자 합자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5일 한진칼 주식 532만2666주(지분율 9.00%)를 사들이며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28.95%에 불과하다.
KCGI 등장을 한진그룹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로, 한진칼의 경영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한진그룹을 통째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지분 30.0%)과 진에어(60.0%), 칼호텔네트워크(100%), 한진(22.2%), 정석기업(48.3%)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KCGI가 이번 지분 매입의 목적을 경영권 장악이 아닌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이라고 밝히면서 경영권 위협 논란은 사그라드는 듯 했다. KCGI는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일각에서 지분 취득을 경영권 장악 의도로 해석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한진칼 경영권에 대한 위협보다는 한진칼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그룹이 발빠르게 비호 세력을 찾아나선 데는 KCGI가 경영권 참여 여지를 남겨둔 점 때문이다. KCGI는 “세부 계획은 없지만 장래에 회사 업무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임원 선임ㆍ해임 또는 직무 정지, 이사회 등 회사 기관과 관련된 정관 변경 등 관련 행위를 고려할 예정”이라는 입장도 밝히며 향후 경영 참여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최근 KCGI 같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펀드들이 등장하며 경영상 주요 결정이 뒤집힌 사례들이 나오며 한진그룹 역시 경영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이란 판단 하에 이번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주주행동주의를 실천하겠다고 나선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이 맥쿼리자산운용에 운용사 변경 등을 제안하고 주총해서 이 안건이 부결됐으나, 운용보수 인하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
한진그룹의 우호 세력은 블라인드 펀드를 가진 사모펀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너가의 갑질 논란 등으로 인해 한진그룹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난 여론을 감수하고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주식 매입가 보장이라는 한진그룹의 조건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빅딜이 없어 블라인드 펀드 수익률 하락에 일부 사모펀드가 투자처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를 비롯해 한앤컴퍼니, JKL, 어피니티 등 대다수 대형 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를 가지고 있다.
블라인드 펀드는 투자 대상을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펀드를 설정하고 우량 투자 대상이 확보되면 투자하는 펀드다.
연금이나 은행, 증권사들의 자기 투자 계정이 있지만,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 만큼 적극적인 기관투자자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사모펀드로 관심이 모아진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어느 펀드가 참여할진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는 주식 매입이기 때문에, 다시말해 대부업과 비슷한 딜이기 때문에 유동성이 좋은 펀드들은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