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 "수제맥주 이제 제대로 경쟁해봐야죠"

입력 2019-06-27 18:05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50년 만에 종가세→종량세 법 개정안 조속히 국회 통과돼 지속 성장 산업으로 자리잡아야"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는 “종량세로 전환되는 주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통과되길 기대한다”며 “이렇게 되면 향후 업계는 품질 경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선진적인 맥주 문화를 한국 소비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제주맥주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국내 생산 공장 및 고용) 잃고도 외양간(주세법) 안 고치는 나라였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 산업을 키울 잠재력이 충분한 인재들이 많고 모두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었는데 법이 받쳐주지 못해 사장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주세법 개편을 위해 계속 큰 목소리를 내며 수제맥주업계의 선봉장을 자처한 제주맥주 문혁기(40) 대표의 말이다. 그의 줄기찬 주장이 한몫해 국내 주세법이 마침내 50여 년 만에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게 되면서 국내 수제맥주업계는 외식 시장에서 잠깐 유행하는 산업에 그칠지, 미국·일본처럼 지속 성장하는 산업군으로 성장할지 갈림길에 섰다.

▲제주맥주는 이달 중순 양조장 증설을 마무리해, 6월 말 시범 운영 후 7월 중순에는 신규 설비로 생산한 첫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양조장 증설로 제주맥주의 연간 생산량은 약 4배가량 증가한다.
뉴욕 포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문 대표는 2012년부터 5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와 자매 양조장을 맺고 2017년 제주맥주를 출범했다. 제주맥주는 세계적인 수제맥주 회사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 회사로, 제주시 한림읍에 연 2000만ℓ 맥즙 생산이 가능한 양조장을 보유했다. 여기에 당초 7월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던 주세법 개정 시기에 맞춰 제주맥주는 연간 생산량을 4배 높이는 양조장 증설 투자를 감행했다. 다음 달 중순께 완공될 양조장 증설을 통해 500㎖ 캔 기준으로 연간 1800만 캔의 추가 생산이 가능해진다.

문 대표가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쉽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주세법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최근까지 세 차례나 미뤄졌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말에도 주세법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백지화하면서 다음 해로 연기됐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5월 주세법 개정 공청회에서 기획재정부는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맥주, 막걸리 종량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내 수제맥주 업계가 그토록 바라던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실제로 많은 수제맥주 업체들이 해외 이전, 폐업 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부터 종량세로 전환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추가 투자를 하거나 창업을 한 플레이어들이 많았는데, 주세법 개정 발표가 계속 미뤄지면서 이미 한 투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줄도산 사태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컸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개정안이 발표된 데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놓은 문 대표는 “아직 국회 통과가 남았기 때문에 완전히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빠른 시일 내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업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전의 국내 주세법은 종가세 체제로 제조원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포함한 출고가격에 72%의 주세를 부과한다. 반면 수입 주세법은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에 세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를 조정해 과세 부담을 낮추고 있는 반면 국산 맥주는 출고가에 이윤,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돼 있다 보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현 주세 체계에서 수제맥주업계는 일반 맥주보다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종량세가 도입되면 더 싼값에 자체 생산한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문 대표는 “종량세로 전환되면 완전히 품질 경쟁으로 갈 수 있다. 고급화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며 “제주맥주도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고 라거, 스타우트 등 여러 스타일의 맥주를 연구개발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종량세로의 전환은 결국 품질 경쟁을 가능하게 해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최근 제주맥주는 글로벌 프리미엄 증류주 회사인 에드링턴과 3년 독점 계약을 체결, 220년 역사를 가진 위스키 브랜드 하이랜드파크와 컬래버 맥주 개발을 시작했다. 문 대표는 “하이랜드파크 위스키를 숙성시킨 오크 배럴 통에 제주맥주가 이 위스키의 풍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맥주를 개발해 담고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켜 내년 초쯤 프리미엄 맥주를 선보일 것”이라며 “이처럼 자체 맥주뿐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프리미엄 레벨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미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제주맥주는 품질 경쟁력에 자신감이 강하다. 문 대표는 “세계로 수출하는 브루클린 브루어리가 동아시아 지역에 자사 맥주를 신선하게 공급할 방법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맥주와의 파트너십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양조장을 세워 전략적 수출 거점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주세법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수출해 판매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생산해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이 더 비싼 우리나라의 주세법 때문에 이 계획은 무기한 연기 상태”라며 “종량세로 전환되면 다시 브루클린 브루어리 측과 한국 생산을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제맥주는 제조업 특성상 전후방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큰 편이다. 미국 양조가협회에 따르면 미국 양조장 수는 2011년까지 평균 1500여 개에 불과했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수제맥주 양조장과 브루펍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2017년까지 매해 1000개씩 늘어났다. 미국 사례를 보면 수제맥주 양조장 개수 증가와 고용 증가가 거의 비례한다는 것이 문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의 사례를 보면 2011년까지 매해 2만6000명 전후로 유지되던 수제맥주 산업 고용인력이 2012년부터 매년 1만 명씩 증가했다.

문 대표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독일, 일본, 미국 등 맥주 선진국의 권위 있는 양조 대회 등에서 인정받은 수많은 청년 양조가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맛있고 다양한 맥주들을 생산하기 위해 열정을 갖고 창업을 하거나 이 업계로 뛰어들었는데 역차별적인 주세법으로 인해 경쟁은커녕 가격 경쟁력이 없어 꿈을 접거나 해외로 나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주세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돼 좋은 수제맥주를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서도 선보일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종량세로의 전환이 최종 통과되면 머지않아 우리가 부러워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맥주 문화를 한국 소비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