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혁신산업 바로미터, 충분한 조율로 중간선 도출해야”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나올 때 전통 산업 사업자(종사자)와의 충돌이나 마찰은 필연적이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21일 서울 서초동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만난 정성인 협회장은 최근 타다 사태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타다 서비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앞으로 이어질 혁신 서비스들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우버나 리프트 등 새로운 형태의 승차 공유 서비스를 택시와 같은 운수업의 테두리 안에 두지 않았다. 제3의 범주인 교통네트워크 회사(TNC)로 규정한 뒤 주마다 각자 규제를 만들어 우버나 리프트 등 승차 공유 업체에 적용하도록 했다. ‘그랩’의 본고장인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초기에 승차 공유 사업을 합법화했다.
정 회장은 1981년 국내 첫 벤처캐피탈인 한국기술개발(현 KTB네트워크) 1기 공채로 출발해 외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2005년부터 프리미어파트너스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올해 초 벤처캐피탈협회 13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인재들이 계속 나와 줘야 하는데 (이번 일로 점차) 안정만 추구하는 사회가 될까 걱정이다”면서 “혁신 산업은 리스크가 크고 시행착오도 많지만, 성공했을 때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도 있다.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덤이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기존 종사자들이 손해를 보는 부분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이를 조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정부가 하는 지금의 벤처정책은 ‘아니면 말고 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깊게 좀 더 멀리 보고 사태를 풀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정 회장은 “기존 산업 보호와 새로운 산업 육성을 놓고, 혁명이냐 정체냐가 아닌 중간 점을 찾아야 한다”며 “일률적으로 ‘0.5’(중간 점)가 아닌 각 분야 특성을 고려한 적정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89년 출범한 협회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연간 미미한 수준을 보이다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을 맞으면서 2조 원을 넘어선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침체기가 지속됐고 2015년에 들어서야 2000년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3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4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정 회장은 이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벤처의 불씨를 살리려면 정부의 인프라 조성과 민간투자 유도가 중요하다고 지목했다. 이를 위한 현안으로는 △연내 벤처투자촉진법 통과와 △새 회계기준인 IFRS9 적용 가이드라인 마련 △전문인력 확충이란 3가지 과제를 꼽았다.
그는 “현재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과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이 있는데 지금의 환경에서 투자를 국한시키는 부분이 있다”며 “협회 숙원사업인 벤촉법으로 이를 일원화시키면 규제와 관련한 많은 내용이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국제회계기준(IFRS)9’의 경우 스타트업의 공정가격을 평가할 때 자산가치만 인정하고, 여러 회계법인이 중복 평가하는 프로세스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일정한 기간은 비상장사 밸류에이션을 투자원가로 평가해주는 유럽의 사례를 참조해 금융당국, 공인회계사회, 거래소 등 관련기관과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벤처투자 금액이 최근 3년간 30%씩 증가했지만, 심사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벤처캐피탈(VC)은 규모의 경제가 아닌 전문성이 경쟁력이기 때문에, 연간 100~300명이 충원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 요청 등 대내외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