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저성장, 저물가의 ‘제로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조 원대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리 수준이 하락하면서 국내외 연기금들이 대체투자 비중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과 주식 등 기존 전통 투자자산으로는 수익률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미 주요 연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700조 원대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비중이 꾸준히 늘리고 있다. 지난 2017년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10.7% 차지했던 대체투자는 2018년 12.0%로 늘어났다. 2019년 8월 말 기준 대체투자는 11.67%에 육박해 연말 기준으로 전년도 수치를 뛰어넘어서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약 3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굴리는 교직원공제회도 대체투자 비중을 2017년 38.3%인 비중을 2018년 42.9%로, 올해 6월 기준으로는 43.5%로 늘렸다. 9조 원대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 공무원연금은 운용자산의 19.47%를 부동산과 사모펀드(PEF) 등 대체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2017년(15.59%)보다 3.8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는 연기금은 16조 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사학연금이다. 사학연금은 이미 대체투자 비중을 2017년 16.4%에서 2018년 17.7%로 확대했다. 특히 사학연금은 일찌감치 대체투자 비중을 올해와 내년에 각각 21.7%, 24%로, 2023년에는 29.7%까지 늘리겠다는 중장기 운용방안을 밝힌 바 있다. 대신 국내채권과 해외채권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5.3% 비중인 해외채권은 2023년 3%대로 줄이고, 올해 34%대인 국내채권 비중은 4년 뒤에는 30.3%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사학연금과 같이 주요 연기금의 대체투자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금리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는 자산이 늘어나면서 연기금의 주요 투자 대상이었던 채권과 주식의 매력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달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는 자산 규모는 12조 달러(약 1경 4148조 원)에 달한다. 마이너스 금리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손실을 보게 되는데, 그런데도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글로벌 경제 둔화 우려에 따른 주요국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만 해도 지난 몇 달간 계속해서 금리를 인하하며 마이너스 영역으로 끌어내렸고, 비유로존 국가인 스위스와 덴마크, 일본 등도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라스 로데(Lars Rohde) 덴마크 국립은행 총재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몇 년간은 금리가 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인구 변화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글로벌 저금리 기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5~10년간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550억 달러(약 65조 원) 규모의 판란드 연기금 ‘일마리넨 뮤추얼 펜션 인슈어런스’의 미코 무술라 투자책임자는 최근 기금 운용과 관련해 국채와 투자등급의 채권 대신 부동산과 인프라 등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대체투자 중에서도 사모펀드(PEF) 투자 비중을 8%대로 늘렸다. 그는 “국채 투자 수익률이 지금처럼 형편없던 적은 없었다”면서 “채권과 같은 전통 자산보다 새로운 투자 스킬이 필요한 상황이고, 지난 15년간 대체투자 중에서도 PE의 과거 투자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대체투자가 ‘대세’로 떠올랐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국내의 경우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부동산 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관련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부동산금융 관계자는 “저금리와 저성장이 맞물리면서 수익성 확보를 위해 회사들이 부동산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현 상황에서 리스크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