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술품으로 상속세 낼 수 있다지만…‘실제 사례 0건’ [스페셜리포트]

입력 2023-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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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 컬렉션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 공개된 루이 미쉘 반 루의 '디드로의 초상'. 1972년 프랑스 최초로 미술품 물납이 성사된 작품으로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프랑스 문화부 집계에 따르면 과거 30년 간 상속세 등 각종 세금을 미술품으로 납부한 금액 규모는 연평균 1470만 유로(한화 약 210억 원)에 이른다. (루브르박물관 컬렉션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상속세를 현금 대신 미술품이나 지정·등록 문화재로 납부할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된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실제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공신력 있는 미술품 가치평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9일 본지 취재 결과 올해 1월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이를 활용해 상속세를 납부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는 202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장남 전성우 이사장 별세 이후 상속세·미술관 유지 비용 등으로 인한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제285호 금동보살입상 두 점을 경매에 내놓은 게 시발점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이나 문화유산은 국가가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그해 8월 국립중앙박물관이 두 보물을 매입했다.

같은 해인 202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까지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가 소장했던 국보급 미술품의 가격 감정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미술계에서는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 우려가 한층 커졌다.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 역시 미술품과 문화재를 상속세로 대신 납부하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 것도 이 시점이다.

납세자는 정당한 가치평가에 따라 세금을 낼 수 있고, 이를 넘겨받은 국가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등을 통해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끌어올릴 수 있어 상호 이득이 있다는 취지다.

올해 1월부터 개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시행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월에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을 통해 '회화, 판화, 조각, 공예, 서예 등 미술품',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유형문화재 또는 민속문화재'로 물납 신청이 가능한 대상도 보다 구체화했다.

그럼에도 개정된 법과 시행령은 현실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술계는 “미술품의 가치평가를 위해 공신력 있는 심의위원회가 운영되지 않는 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술품은 종류, 제작 연대, 작가 이력 등 평가 요소가 워낙 다양해 그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 최종 판단하는 믿을만한 가치평가 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취재에 응한 미술계와 학계 등 관계자들은 대부분 “물납 대상을 엄격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신뢰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가 운영되지 않는 한 미술품 물납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법제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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