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 이르면 올해 '0명대' 진입 가능성…통계 착시, '모범사례'로 포장돼 문제 악화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이하 출산율) 감소가 가파르다. 이르면 올해 0명대로 추락할 위기다. 보육 친화 도시이자 ‘저출산 극복’의 롤모델로 칭송받던 ‘전국 출산율 1위’의 민낯이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15년 1.89명이었던 세종시의 출산율은 지난해 1.12명으로 줄었다. 올해 2분기(0.94명)에는 처음으로 분기 출산율 0명대를 기록했다. 통상 분기별 출산율은 1분기에 높고, 3~4분기 낮다. 이 때문에 이후 2분기 출산율은 연간 평균치에 가깝다. 이런 경향은 입학시기 변경(3월→1월)으로 빠른년생(1~2월생) 조기입학이 폐지된 2009년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세종의 출산율은 2분기 1.09명, 연간 1.12명이었다. 3분기 이후 반등이 없다면, 추세상 세종의 연간 출산율은 0.94~0.97명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세종 출산율 감소의 주된 배경은 혼인율 감소다.
세종시 인구는 2015년 21만1000명에서 지난해 38만4000명으로 7년 새 82.0% 급증했다. 이 중 20·30대는 5만4000명에서 10만 명으로 85.2% 늘었다. 그런데 출산율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는 1498건에서 1664건으로 11.1% 느는 데 그쳤다. 모수가 커졌는데 혼인 건수는 정체돼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인 조혼인율은 2015년 8.2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반 토막’ 났다.
세종시 출범 초 출산율 증가세를 주도했던 건 신혼부부 유입이었다. 혼인율 감소에 따른 출산율 감소가 신혼부부 유입에 따른 출산율 증가 효과에 가려졌다. 이제는 과거 신혼부부들이 구(舊)혼부부가 됐다. 집값 폭등으로 타 지역 신혼부부 유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신혼부부 유입이란 거품이 걷히면서 이제야 세종시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신도시 프리미엄’에 모두가 속았다
세종시 출범 초 높았던 혼인율은 일종의 통계상 착시다.
본지가 통계청 인구이동통계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5년 세종에 전입한 20·30대의 47.4%는 2인 이상 세대였다. 애초에 임신·출산 가능성이 큰 신혼부부 유입이 많았기에 출산율이 높았던 것이다. 특히 2015년에는 1생활권(고운동·아름동·종촌동·도담동·어진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이 시기 혼인율도 높았던 건 예비 신혼부부와 혼인신고 전 신혼부부들이 준공·입주 시기에 맞춰 세종에 전입했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교수는 “과거 세종시는 인근지역보다 전세가가 저렴했고, 아이 키우기 좋다는 입소문도 퍼져 대전 등에서 신혼부부들이 많이 유입됐다”며 “이는 세종뿐 아니라 신도시에서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전후 세종의 아파트 분양가는 공급면적 3.3㎡당 700만~1000만 원, 전세가는 84㎡ 기준 1억~1억500만 원 수준이었다. 신축임에도 대전, 충북 청주시 등 인근지역보다 분양가와 매매가, 전세가가 낮았다.
신도시 인프라는 일반적으로 도로·주택·교통, 공공·교육·보육·의료, 상업시설 순으로 발달한다. 건설 초기엔 주택 공급량이 많아 집값과 전세가가 저렴하고 전반적인 주거환경이 쾌적하지만, 상업시설이 부족하다. 1인 가구나 취학 자녀를 둔 가구보단 예비·신혼부부의 수요가 높다.
유사사례로는 경기 화성시의 동탄신도시가 있다. 2007~2009년 화성시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6년 31만 명이었던 화성시 총인구는 2009년 49만2000명이 됐다. 연도별 증가율은 2007년 19.9%, 2008년 20.8%, 2009년 9.4%에 달했다. 2015년 전후 세종과 마찬가지로 신혼부부가 인구 증가세를 주도했다. 그 결과로 2007~2011년 화성시의 출산율은 1.8명 안팎을 오갔다. 같은 기간 전국 출산율은 1.2명 안팎에 정체돼 있었다.
문제는 신도시 프리미엄의 지속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업시설은 발달하지만, 주택 신규 공급량은 준다. 이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동탄은 2010년 전후 전국적인 주택시장 침체에도 집값을 지켰다. 수도권 미분양 사태 전까지 아파트 분양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집값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사라지자 신혼부부들의 발길이 끊이고, 인구도 정체됐다. 2010~2014년 화성시의 연도별 총인구 증가율은 0.9~2.9%에 그쳤다. 출산율은 1.5명대로 떨어졌다. 세종의 상황도 비슷하다. 집값이 폭등한 2019년 이후 인구는 정체되고, 출산율은 급감하고 있다. 2015년 47.4%에 달했던 전입 20·30대 중 2인 이상 세대 비중은 지난해 26.1%까지 떨어졌다. 세종은 이제 신혼부부들에게 ‘가성비’가 떨어진다.
◇‘저출산 극복’ 롤모델은 무슨….
그간 세종은 저출산 극복의 롤모델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세종의 보육 친화적 환경이 출산율 증가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실제 세종의 보육 인프라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보육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세종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은 38.9%다. 전국 평균(21.0%)의 두 배에 육박한다.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은 ‘보육의 질’ 평가지표 중 하나다. 세종의 전체 어린이집은 2015년 216개에서 올해 9월 311개로 늘었는데, 신설 어린이집 대부분이 국공립이다. 여기에 문화센터, 키즈카페 등 아동 관련 민간시설도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런데, 보육 친화적 환경이 결혼 친화적 환경을 의미하진 않는다. 2021년 출생아 중 97.0%는 혼인관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무리 출산·보육 여건이 좋아도 혼인율이 오르지 않으면 출산율도 오르기 어렵다. 세종의 무너진 혼인율은 세종이 보육에 친화적일지라도 결혼에는 친화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이유는 집값이다. 과거 완만하게 감소하던 세종의 혼인율은 ‘투자 광풍’으로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2019년부터 감소 폭이 가팔라졌다.
한국행정연구원 공직생활실태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30대 공무원의 유배우율(이혼·사별 제외)은 2019년 42.7%에서 지난해 29.4%로 급락했다. 정부청사 소재지인 세종에서 공무원은 총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다.
이 교수는 “과거 언론과 전문가들이 출산율만 보고 세종을 모범사례로 띄웠다”며 “사실 세종의 출산율은 신도시 프리미엄으로 대전, 청주시, 충남 공주시 등 인근지역의 출산율을 빼앗아온 것인데, 마치 보육기반이 좋아 스스로 출산율이 오른 것처럼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간의 정책 오류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세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