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못 한다고 근로계약 해지한 회사…법원 “부당 해고”

입력 2024-11-03 09:00수정 2024-11-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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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근로계약 조건인 운전 능력 미달…계약 무효”
법원 “우대 사항일 뿐 조건 아냐…근로계약 해지도 일방적”

▲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업무 수행에 필요한 운전 능력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직원과 근로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 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채용 공고에서 ‘운전 가능자 우대’라는 기재사항을 적시해서 직원을 뽑았더라도 이는 말 그대로 우대사항일 뿐 근로계약의 필수 조건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원고 A 주식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 주식회사는 강구조물 공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지난해 2월 9일 무역 사무원 모집 글을 올리고 우대 사항으로 ‘운전 가능자’를 기재했다. B 씨는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했다. 다만 서면 근로계약서는 작성되지 않았다.

이후 A 사는 B 씨가 거래처 방문 업무 수행에 필요한 운전 능력이 미숙하다는 등의 이유로 근로계약 종료 의사를 알렸다. A 사는 B 씨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면서 근로계약을 종료할 의사를 통보했고, B 씨는 100만 원을 받으면서 지출결의서에 자필로 서명했다.

그러나 B 씨는 계약이 종료된 해 4월 4일 법무법인을 찾아가 부당 해고 구제 신청 관련 사건위임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법무법인은 다음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A 사 통보가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구제 신청서를 발송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이 구제를 받아들이자, A 사는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는 지난해 8월 20일 서울지방노동위와 같은 취지로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A 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 사는 근로계약 조건인 운전 능력이 미달돼 계약이 무효이거나 무효가 아니더라도 근로계약 해지 제안을 B 씨가 동의해 합의 해지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채용 공고에 ‘운전 가능자’가 우대 사항으로 기재돼 있기는 하지만, 우대 사항에 불과할 뿐 근로계약 조건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채용 공고에는 담당 업무와 관련해 ‘무역업무 보조, 수출입 관련 업무, 문서 작성, 통관 서류 관리’와 같은 서류 업무가 채용 예정자의 담당 업무로 기재돼 있을 뿐이다”라며 “지방에 위치한 거래처를 운전해 다닐 정도의 운전 실력이 이 사건 근로계약의 필수적 조건이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근로계약 합의해지 여부도 원고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이 종료됐다”고 판단했다.

또한 “B 씨가 이 사건 통보 당시 즉각적으로 회사에 항의하거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바로 변호사를 통해 상담을 한 뒤 서울지방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했다”며 “B 씨가 근로계약 해지에 합의했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B 씨가 100만 원을 수령한 행위도 기존 근무에 대한 급여 명목 지급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근로계약은 B 씨의 의사에 반해 원고 일방적 통보로 종료돼 해고에 해당하고, 그 방식이 근로기준법 제27조에 위배해 위법하다”며 재심판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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