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내년 1월부터 한시적으로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에 나선다. 명목상으로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진 취약차주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의 '고통 분담' 정책에 등 떠밀린 모습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은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1년간 면제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정치권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당정회의에서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전환하려고 해도 중도상환수수료율이 높아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권이 고금리 시대의 혜택을 누리면서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데 취약계층에 한정해서라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은행권에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우선 우리은행은 내년 1월 2일부터 신용등급 5등급 이하 저신용자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를 1년간 면제한다. 당정 협의에선 등급하위 30%(신용등급 7등급 이하)에 대해 중도상환수수료 감면을 요구했지만, 우리은행 측은 대상을 신용등급 5등급 이하로 확대해 시행하기로 했다. 또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가능 시기도 대출 만기 1개월 전에서 3개월 전으로 늘려 면제 대상을 확대했다.
신한은행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신용대출·전세자금대출·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상품 종류와 무관하게 내년 1월부터 중도상환수수료를 1년간 면제하기로 했다.
KB국민·하나·NH농협은행도 신한은행과 마찬가지로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일괄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산프로세스를 구축한 후 내년 1월 중 시행할 예정이며 운영기간은 시행일로부터 1년이다. 5대 시중은행의 이번 결정으로 최대 600억 원의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은행권에서도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정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은행권은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서민경제 부담이 커지자 취약차주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안심전환대출과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 신청 차주의 기존 보유 대출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줬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조달자금 불일치에 따른 손해배상 성격이 강한데, 면제 조치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은행이 떠안아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 시 신용대출의 경우 신용조사, 담보대출의 경우 담보권설정 등에 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또 은행이 대출계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중도상환하면, 남은 기간에 대해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행으로선 여기에 따른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금리와 중도상환수수료 등이 매겨진다.
은행권은 이번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가 전체 차주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저신용자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취지에 공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경제 상황이 어렵고, 취약차주들은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에 은행들도 고통 분담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다 같이 발 벗고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은행들도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대출 원금을 감면해주거나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줬는데,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선 이를 확대하라고 요구만 하다 보니 은행권 입장에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