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엔테크(엔화+재테크)족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엔화를 팔아 환차익을 노려볼 수 있어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전날 기준 엔화예금 잔액은 1조2287억 엔이다. 이는 전월 말(1조2130억 엔)보다 1.3%(157억 엔) 증가한 것이다. 엔화예금 잔액은 작년 12월 말 1조1330억 엔, 올해 1월 말 1조1574억 엔, 2월 말 1조2130억 엔으로 점차 증가 추세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4년 2월 중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에서도 같은 추이를 보인다. 지난달 엔화예금은 4억6000만 달러 증가한 98억6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석 달 만에 늘어난 것이다. 엔화예금이 증가한 것은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해 4월 27일 기준 100엔당 1001.61원이었으나, 이후 점차 하락하며 같은 해 11월 16일 100엔당 860.66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0원대를 오르내렸고, 전일 기준 891.51원을 기록했다.
앞서 BOJ는 이날 경기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하기로 했다. 2016년 2월 도입한 후 8년 만이다. 일본은행은 -0.1%였던 정책 금리를 0~0.1%로 끌어올렸다. 금리를 인상한 것은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다.
엔화예금은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를 엔화로 바꿨다가 엔화 가치가 오르면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BOJ의 이번 정책 금리 인상으로 당분간 엔화 가치 상승이 기대되면서 환차익을 기대하는 엔테크족이 몰려 엔화예금 잔액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엔화를 사고팔 때 수수료가 붙지 않는 토스뱅크 외화통장 거래도 엔화에 몰렸다. 토스뱅크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17일까지 엔화 거래가 9787억 원에 달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외화통장 거래 고객의 0.12%가 고액 단타 투자로 나타났고, 전체 외환거래 중 40%가 엔화에 투자한 것”이라며 “엔화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고 장기적으로 돈을 굴리려는 엔테크족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엔화 가치 상승을 기대한 상품에 투자한 엔테크족도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올해 초부터 전일까지 KB자산운용 ‘KBSTAR 미국채30년엔화노출(합성 H)’ 상장지수펀드(ETF)를 713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기간 개인은 1월 12일 하루를 제외한 모든 날 순매수세를 보였다.
개인은 12일 상장한 한국자산운용의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ETF도 5 거래일 연속 사들이는 등 89억 원 순매수했다.
해당 상품들은 엔화와 원화 환율변동에 노출된 ETF로 미국 국채 30년물 투자와 더불어 엔화가치 변동에 따른 환차익을 누릴 수 있다. 개인은 엔화에 직접 투자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일본엔선물’ ETF도 95억 원어치 사들였다.
해외주식 투자자 역시 엔화에 베팅하는 흐름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주식 투자자들이 네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은 일본에 상장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헷지’ ETF로 2억1442만 달러어치 순매수했다. 이는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ETF다. 해당 종목은 일본 엔화 가치 상승과 미국 금리 인하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BOJ가 정책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당분간 환차익을 기대하는 상품들에 돈이 몰릴 것”이라면서도 “상품별 각종 수수료를 고려해야 하고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신중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을 떼면서 향후 엔화는 초약세 국면을 마무리하고 점진적 강세로 전환되리라 예상된다"며 "BOJ의 정책정상화 지속, 미 대선 등 지정학적 이슈 등 엔화 강세 요인이 부각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연말로 갈수록 엔화 강세가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